정명희 화가

정명희 화가

[동양일보]쾰른하면 떠오르는 세가지중 첫째가 ‘쾰른 아트 페어’다. 내 조형세계를 새롭게 만들어준 고마움이 지금도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17년 전 박여숙화랑 초대로 화가 함섭(1942~ ) 등과 함께 참가했었던 도시다. 하루 종일 전시장에서 6백만 불의 사나이 같은 최첨단 조형지식을 집중적으로 주입 시켰고, 후회와 기대로 퇴근하면 집집마다 맛이 다른 수제맥주를 마시는 호강도 누렸지만 숙소로 돌아와 누우면 전시장의 긴장이 온통 천정에 붙어 있었다.

두 번째는 같은 해에 치루 어진 독일 월드컵(2006)이 아니더라도 이미 잘 알려진 축구선수 차범근(1953~ )을 외치며 같은 한국 사람으로 우쭐 하던 기억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1917~1985)의 숨결이 고즈넉한 도시에 배어 나를 들뜨게 하던 추억이 마지막이다.

그는 쾰른대학에 다녔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징집되어 참전했다. 1949년 첫 소설로 ‘열차는 정확했다’를 출간했고 4년 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말표 하면서 작가의 위치가 확고해졌다. 이후 ‘여인과 군상’을 발표했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사망하자 기존의 쾰른문학상은 그의 이름을 따서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명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독일에 유학했던 전혜린(1934~1956)의 번역으로 우리에게 소개 되었었다. 또한 그녀의 동명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의 인기도 단연 대박이었다.

이 하인리히 뵐의 단편 중 ‘칼로 먹고사는 사나이’에 나오는 주인공 ‘유프’는 서커스단에서 칼 던지는 묘기를 보이며 먹고 산다. 그는 늘 관객이 즐거워할 소재를 개발하려 노력한다. “나는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는 게 정말 즐거워, 그러니까 사람들을 간질여주고 돈을 받는 거지, 사람들은 언제나 공포심을 등에 매달고 다니거든, 나는 그 공포심을 잠시잠시 잊게 해주는 대가를 받는 게 좋아.”라며 관객들을 위한 노력을 궁리하는 낙으로 산다.

최근 KBS가 방송 시청료 문제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러나 국민 다대수는 그 KBS를 듣지도 보지도 않는 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존재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강제징수를 지속하겠다는 건 날강도 같은 심보다. 그들은 공영방송의 목적을 잃은 채 돈 벌 궁리에만 혈안이다. 게다가 직원 절반의 연봉이 1억 원을 넘는다는 사실에 온 국민은 경악하고 있다.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투성이 KBS는 잊은 듯 제쳐두고 오히려 정치편향과 역사왜곡에 가짜뉴스 제조공장 같은 짖을 마다않았다.

칼로 먹고사는 소설 주인공도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게 상식인데, 최소한의 노력이 결여된 KBS를 어떤 국민이 좋다고 할 것인가. 공영방송으로 중도를 지키며 국민에게 삶의 지혜와 안목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도 이 방송 저 방송 채널 돌리기에 바뿐 국민이다. 뉴스와 기사에 숨겨진 거짓도 역사의 거름망에선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공영방송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난지 오래다. 지혜의 칼로 온갖 망상을 지워버리고 개과천선하는 자세로 시대정신과 미래지향적 언론의 바른길을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지난날 언론들이 국민계도를 위해 불철주야 솔선수범하던 그 노력의 반만이라도 따랐어야 했다. 뉴스 하나만이라도 KBS가 국내 여타 방송에 비해 가장 믿음직하다는 국민여론을 잡을 수만 있었어도 지금처럼 시청료를 문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언제나 정직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이런걸 아제 개그로 하면 기브는 앤드가 테이크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것도 있는 법. 최근엔 돈 봉투로 문제가 된 피의자에게 30분씩이나 마이크까지 쥐어주었다니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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