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동양일보]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해 갑론을박이 요란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과학자나 의사, 생태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존경받는 과학자와 전문가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여야 정당이 나서 일제히 현수막을 내걸고 “과학”과 “선동”을 외치는 여론 전쟁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 문제는 오염수를 정화했다는 일본에 대한 주관적인 신뢰의 문제로 돌변했다. 과학적 검증과 측정에 관한 문제가 정치화되는 비정상은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도 촉진한다. 정부가 일본에 보낸 시찰단은 그 명단조차 비밀이다.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가 정당화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라는 권위다. 일부 언론은 마치 IAEA가 일본의 오염수 정화과정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검증하는 기관이며, 이런 IAEA를 신뢰하지 못하면 무엇을 신뢰하겠느냐고 다그친다. 과연 그러한가. 최근 발표된 IAEA의 4차, 5차 보고서에서는 오염수 정화의 전 과정은 “오직 일본 정부가 자체적으로 통제(self regulation)하며” IAEA는 단지 “기술적인 지원(assist) 역할만 하는 기관”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만일 오염수 방류가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를 일으켜도 IAEA는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다. IAEA는 검증을 책임지는 감리기관이나 인증기관이 아니고 단지 컨설던트 역할만 한다. 일본 정부는 2011년 당시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외국의 복구 지원 일체를 거절하였고, 지금도 외국 정부나 전문기관, 국제 환경단체의 접근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보고서에서도 IAEA는 일본의 오염수 정화과정을 “신뢰할만 하다”고 했다. 분명하게 정화과정의 과학성이 검증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안전성을 확인했다는 말이 아니다. “신뢰할만하다”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나는 여태껏 꽤 신뢰할만한 지인들로부터 숱하게 돈을 떼였다. 만일 어떤 친구가 돈 빌려주기를 망설이는 나에게 “나를 신뢰하지 못하냐”며 섭섭해 하면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빌려주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돈은 떼이는 거다. 일본 정부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주관적 표현을 근거로 정부와 여당이 IAEA를 ““신뢰 안 할 거냐”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신뢰만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은 단지 채권과 채무 문제만이 아니다. 논리적 엄밀성을 요구하는 과학에서는 이런 주관적 표현은 자제되어야 한다. 7월에 발표될 IAEA의 최종보고서도 이렇게 모호한 결론만 내려진다면 우리는 심각한 혼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과학자들, 소위 전문가들의 침묵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나? 나는 이 침묵이 아주 불길하다. 정치인들이 나서서 과학의 권위를 독점하려는 소음 전쟁이야말로 재앙적이다. 그들의 입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말들이 바로 오염수다. 우리 정치가 바로 오염의 근원이 되었을 때 과학자는 말하지 않고, 시인은 생명을 노래하지 못한다. 사회의 건강한 정신이 죽어가는 양상이다. 과학의 기준이 모호한 가운데 정당과 정당, 시민과 시민이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는 분열적 행태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신이 이미 오염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과학의 문제는 과학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진정한 신뢰는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토대 위에서 비로소 축적되는 법이다. 지난봄에 전기 요금 인상 문제를 산업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의 논리로 접근했다가 한전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사태를 보라. 우리나라 정당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차분하면서 냉철한 이성과 과학이 말하도록 공론의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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