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충북수필문학회장

이영희 충북수필문학회장

[동양일보]고향이 거기에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를 그린 ‘맥파’가 향수를 자극하고, 밭두렁 논두렁을 넘어 나붓대는 보리의 군무는 관람객을 환영한다. 서걱거리며 거친 듯 싱싱한 자태로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재직 시 근무처에 걸려 있든 작품이라 더 반갑고 발길이 오래 머문다. 맥파는 1978년 백양회 공모전 대상 수상작으로 유명하다.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보리 작가 송계 박영대 화백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회다. 출근부 찍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잼처 발길이 향한다.

그전에는 농부가 늦은 가을 괭이와 고무래로 흙을 낱낱이 부숴가며 땅속에 정성스레 보리 씨앗을 깊이 묻었다. 그런 다음 혹한을 견디는 보리를 내 자식 믿어 주듯 기다려 주었다. 지금은 보리밭을 흔히 볼 수 없어 격세지감을 느끼니 아마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대신하지 않을지.

봄이 오면 보리밟기를 했다.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 하는데 언 땅이 녹으면 솟아오른다. 그것을 발로 밟아야 뿌리가 잘 내려서 모내기 전까지 잘 자란다. 학교 다닐 때 체육 시간에 단체로 보리밟기를 했는데 새싹을 밟는 게 미안하고 발이 시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6월의 들판이 무르익을 때 보리는 시나브로 누렇게 물들어 추수를 재촉한다. 벌써 황맥이 된 것이다. 24 절기의 하나인 망종은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이라는 뜻으로 아주 몹쓸 종자를 뜻한다. 행실이 못된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쓰기도 하니 얼마나 따가웠는지 짐작이 간다. 배가 고파 보리 까끄라기를 손으로 비빈 다음 후 불어서 먹으면 달보드레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 시절은 보릿고개가 있던 절대 빈곤의 시기였으니. 큰 마당에서 긴 도리깨로 장단을 맞춰가며 보리타작해 몽근 알곡을 거두던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밀주를 금하던 시절이라 보리 집 가리에 누룩을 숨겨두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긴 세월 정성을 들인 대작 ‘황맥’ 앞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 눈에 보리알갱이가 튀어 들어갔는데 안과가 없던 시골이라 부모님이 굉장히 애를 태웠다고 한다. 그런 말씀을 들었어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황맥이 아름답게 익어가는 추억을 소환한 덕이다.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와 인고로 추운 겨울을 보낸 보리는 작가 자신과 흡사하고 우리 민족성과도 닮아있다. 그는 어려운 시절 독학으로 취업한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보리에 매진할 만큼 큰 용기와 결단력을 가진 인간승리의 표상이다. 미치지 아니하면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몸소 실천하며, 모든 어려움과 환경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대영박물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외국에서 수시로 초청하는 대작가로 거듭났다.

맷방석에 널린 콩깍지, 엿기름이 담긴 소쿠리와 구멍 나고 헤어진 도래방석 등 사실적인 표현이 관람객을 고향의 마당으로 데려다 놓는다. 연이어 굽이치는 밭고랑 등 씨앗이 지닌 강한 생명력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대자연의 순리를 따라 더 깊어진 ‘보리미학’ 뒷부분은 작업에서 발생한 재료를 찢고 붙이기를 수십 번 하여, 번지는 우연의 효과를 극대화한 생명 연작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리워 찾아가도 옛 모습이 사라진 고향은 허전하다. 이런 헛헛한 마음에 바리바리 생명력을 실어주는 보리미학 전시회는, 미술관이 고향이듯 발길이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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