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첫째,“하얀 눈 위에 황소발자국, 아침에 태양이 영롱하다. 해질 무렵이 되면 저녁노을만이 화려하다”

<춘추좌씨전>양공(襄公) 25년 조에“말을 해서 자신의 뜻을 잘 드러내고, 문식(文飾: 표현 수사修辭)을 잘해서 그 말의 뜻을 분명하게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누가 그 뜻을 알겠는가. 말을 했다 하더라도 문식이 없으면, 유행해도 오래가지 않는다.(言以足志, 文以足言, 不言誰知其志, 言之無文, 行而不遠)”이것이 필자가 오경과 사서등을 강조한 이유다.

둘째,이번엔 <덕산구곡시(德山九曲詩)>에 수록된 시와 문장을 지은 사람의 성명을 소개한다. 혹 그 분들이 지은 시와 문장을 붓으로 베껴놓았는데, 출간하지 못하고 남아있을 수 있다. 이런 기회에 연락이 닿아 세상에 알리면 홍익이 되기 때문이다.

1).「덕산구곡시서(德山九曲詩序)」 2편. (1)홍승운(洪承運). (2)세정유(歲丁酉) 은춘지상순(殷春之上旬), 불초자(不肖子), 희명근기(熙明謹記). 정유(丁酉)는 1897년이다.

2). 창수시 작자 : 이진옥의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1)원운(原韻) 이희창(李熙昌) : 이진옥의 장남. (2)이희명(李熙明) : 이진옥의 차남. 제공차운(諸公次韻).(3)방촌(芳村) 이직(李稙). (4)평창(平昌) 이장규(李章奎). (5)노면국(盧冕國). (6)주석렬(周錫烈). (7)이병달(李炳達). (8)신안(新安) 민치익(閔致益). (9)장문섭(張文燮). (10)김맹호(金孟浩). (11)대방(帶方) 윤행면(尹行冕). (12)김연식(金演植). (13)한산(韓山) 이운식(李雲植). 14) 김납성(金翋性). (15)종하생(宗下生) 규세(奎世). (16)박노경(朴魯卿). (17)종하생(宗下生) 석노(錫魯). (18)청하(淸河) 이봉기(李鳳基). (19)북은(北隱) 박재천(朴在天). (20)문인(門人) 김긍연(金兢淵). (21)문인(門人) 유동원(柳東元). (22)문인(門人) 이희목(李熙穆). (23)문인(門人) 김인성(金仁性). (24)윤행의(尹行義). (25)문인(門人) 이인섭(李寅燮). (26)문인(門人) 조덕증(趙悳增). (27)문인(門人) 이헌규(李憲珪). (28)문인(門人) 민택노(閔宅魯).(29)문인(門人) 근하(根廈). (30)문인(門人) 안호(安灝). (31)문인(門人) 이구하(李龜夏). (32)문인(門人) 이원하(李瑗夏). (33)문인(門人) 신양호(申養浩).

3). 만시(挽詩)의 작자. 문인(門人) 평산(平山) 신근수(申根秀) 5언 고시 1수. 문인(門人) 순천 박노정(朴魯定) 7언 율시 1수, 7언 절구 1수 합 2수. 종하생(宗下生) 규세(奎世) 7언 율시 1수, 7언 절시 1수 합 2수. 이상에서 제시했듯이 덕산구곡시의 내용은 서문: 2편, 구곡시 창수 33편, 만시 5수이다. 구곡시에 창수한 사람은 아들 2명, 종하생 2명, 교유인물 15명, 문인 14명이다. 만시는 종하생 1명, 문인 2명이 지었다.<덕산구곡시>의 총 분량은 74면이다.

위에 제시한 사람들의 후손이나 그 분들을 아는 분들은 서로 연락하고 그 분들의 문집이 남아있는지 알아봐주기 바란다. 2018년 경 이후부터는 부모가 돌아가면, 고향 사람들에게도 잘 알리지 않고, 화장해서 분골함을 묻고 간다. 장례 날에 탈상하고 부모의 유품을 모두 소각하거나 매각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그래서 남아있을 가능성은 적다. 그냥 가느다란 희망을 걸어본다.

넷째, 2019년경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다”라는 말이 대유행했다. 덕산구곡이 정해진 자리에 2008년 저수지 축조공사를 하여 여러 마을이 수몰됐다. 현지주민들은 홍익을 위해 고향을 잃었다. 저수지를 축조한 관청에서 그 현장을 잘 기록해 남겨놓았으리라 믿는다. 기회가 되면 확인해보리라. 가치가 있는 기록을 남긴 사람은 역사 위에 남는다.“온고지신하여 홍익인간이 되면 더욱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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