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송보영 수필가

[동양일보]참 맛나다. 팥고물을 듬뿍 얹은 찰시루떡이다. 고물을 기계로 갈지 않고 손으로 찧어 부드러운 데다 통팥이 듬성듬성 한 것이 떡의 풍미를 한껏 살려 준다. 찰지고 따끈따끈한 것이 입안을 춤추게 한다. 나는 원래 떡보다. 떡에 대한 입맛도 쓸데없이 까다로운 편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맛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아주 단순한 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나치게 주무르지 않고 쓸데없는 것을 첨가하지 않은 옛날에 먹던 맛을 선호하는 편인 내게 이 팥시루떡은 입맛에 딱 맞는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만드시던 것을 상기하며 집에서 해 먹기도 하는 차진 맛이다. 요즈음은 떡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인가 옛 맛을 잃어가는 터라 떡 본래의 순수한 맛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

여기에 이 떡이 유난히 맛난 것은 떡이 맛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웬 젊은 부부가 서 있었다. 오늘 아래층으로 이사를 왔다며 팥시루떡이 든 접시를 내민다. 반갑기 그지없었다. 요즈음 같은 때에 이사를 왔다고 부부가 이사 떡을 듣고 인사를 왔다는 사실이 감동을 주었다. 순간 내 마음은 더없이 순해졌고 짧은 순간이지만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부부의 모습을 살펴보던 중 새댁의 봉긋한 아랫배에 눈길이 머물렀고 아이 낳기가 부담스러워 부부만의 삶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이 시대에 아기를 갖은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 태중에 아기가 잘 자라 순산했으면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또한 이 젊은이들의 삶이 팍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왠지 이웃 어른으로서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 젊은 부부를 축복해 주고 싶어졌으니 참 모를 일이다.

그동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그중에도 주거 형태가 달라졌다. 이전의 주거 형태가 담 너머로 얼굴을 마주 대하며 조석으로 수인사를 나누던 것이었다면 지금은 철 대문이 굳게 닫혀있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소통의 부재 시대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렵고 타인의 마음 또한 알려 하지 않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가려 하면 사생활 침해라며 경계심을 갖는다. 세상이 흉흉하여서인가 이웃 간에 마음의 문도, 대문도 걸어 잠그고 산다. 어쩌다 승강기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 귀여워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성추행이라 오해받는 세상이 돼 버렸다.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 우리의 삶이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는 시대를 살았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은 굳이 감정을 소모해가며 불편스러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혹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쓸데없이 얼굴을 붉히며 감정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직접적인 대상이 아닌 화면 속의 간접적인 대상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세상의 온갖 정보를 수시로 전달하는 성능 좋은 전자기기만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도 좋고 이도 좋으리라. 그러나 문만 열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이웃들과 수인사라도 나누며 살아간다면 이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는가. 아파트 승강기를 오르내리며 자주 만나는 이웃들, 그들 중 누군가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고 별일 없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도하고,

봄볕이 따사로운 오후. 이웃의 젊은이들을 마음으로 축복하며 팥시루떡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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