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성 수필가

함무성 수필가

[동양일보]창문을 여니 새 소리가 청량하다. 창백한 새벽달이 숲속마을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데 새들은 벌써 일어나 아침밥을 기다린다.

지난겨울부터 새 밥 주기를 시작했다. 수북하게 눈이 쌓인 겨울, 아침 설거지를 하던 중에 주방 창문을 통해 새를 보았을 때부터이다. 자식들이 제 짝 찾아 다 떠난 후 눈 속에 묻힌 산속마을에서 우리 부부는 빈둥지증후군을 애써 외면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설거지 그릇이라야 밥공기 둘, 국그릇 둘, 김치보시기 하나, 김 접시하나가 전부이지만, 그 시간에 마주치게 된 새들의 모습은 시린 가슴에 온기를 주는 것 같다.

창밖의 죽단화 가지위에 참새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마른 가지에 열매인양 달려있는 새들이 열 댓 마리는 되는 것 같다. 녀석들도 아침식사를 마치고 휴식 중인가. 찬바람에 테니스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부풀리고 통통거리며, 사뿐거리며, 이쪽가지에서 저쪽가지로 옮겨 다니다가 한 녀석이 날아오르면 모두 따라 날아간다. 거의 같은 시간에 모여드는걸 보니 녀석들도 나름대로 생활규칙이 있나보다.

새들의 그 귀여운 모습이 어렸을 적의 내 아기들 같다. 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어 방울을 달아주고, 예쁜 원피스를 입혀 놓으면, 언니 동생이 손을 잡고 팔랑거리며 놀이터로 뛰어 나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자식들도 성인이 되어 어미둥지를 떠나 가정을 꾸리고, 제 자식을 기르느라 동분서주하니 얼굴 보기도 어렵다. 어쩌면, 지지고 볶고 힘들게 살던 옛 시절이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빈둥지를 지키며 허전한 듯, 아릿한 듯, 의욕조차 저하되는 이 심리를 무슨 말로 표현해야하나.

지난겨울부터 새들의 엄마를 자처했었다. 모이를 들고 휘파람 소리를 내면, 집 뒤뜰로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몰려온다. 그 중에서도 참새와 섞여서 생활하는 곤줄박이는 알록달록한 모습도 예쁘지만 친화력이 유독 많다. 참새들은 늘 모이를 주는데도 경계를 하지만, 곤줄박이는 하루가 다르게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다. 급기야는 내 손바닥에까지 내려앉아 땅콩도 물고 간다. 생명이 있는 작은 것이 내 손끝을 스치는 그 짧은 감촉이 사랑의 징표인양 소중하다. 어느새 곤줄박이는 어미 품에 매달리던 어린 딸의 모습이 된다.

봄이 왔다. 새싹들이 돋아나고, 털을 부풀리던 참새들은 가지런히 털을 가다듬어 홀쭉하다. 머지않아 새들은 숲에서 곤충을 먹으며 살찌우고, 가을이 오면 온갖 씨앗들을 먹게 되겠지. 새 모이 주는 일은 이제 멈추어도 되겠다.

작은 방 창 안에 숨어서 새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상도 멈출 때가 되었다. 봄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면, 겨울새를 보던 눈으로 꽃을 보며 빈둥지의 허전함을 메워야할까.

소나무 가지 사이에 놓아두었던 새 모이그릇을 거두러 갔다. 곤줄박이는 또 모이를 주는 줄 알고 친근한 몸짓으로 내 주위를 맴도는데, 참새들은 놀란 듯 무리지어 날아간다. 꽃망울 부푸는 봄은 왔지만, 날아간 새들도, 눈에서 먼 인연도, 떠나가는 모든 것들이 애달프다. 눈 쌓이는 겨울이 오면 나는 또다시 휘파람을 불며 새를 불러 모을 것이다.

모이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선반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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