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길, 그곳에 들어서면 걸음이 멈춘다
격돌하는 현재로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곳
“시정신 명료하게 살려낸 건축물” 돋보여

 

[동양일보 도복희 기자]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 12, 그곳에 들어서면 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다. 벽면에 새겨놓은 시인의 시편들이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시 한 줄을 담아 한걸음을 내딛고 다시 시 한 행에 눈을 두게 된다.

 

이 길에 들어서면 신동엽 시인은 추모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격돌하는 현재가 된다. 그의 시정신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시인의 발자국이 쌓여서 길이 되고 이후 마을을 이룬 곳에 시인의 생가터가 자리 잡은 곳. 그 뒤 둔덕 공터에 건립된 신동엽문학관은 시인의 시정신을 명료하게 살려낸 건축물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가 있다.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시인이 작품구상을 위해 걸었던 곳에 길이 생기고 사색했던 자리에 문학관 건물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장편서사시 “금강”의 시인 신동엽

신동엽 시인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 장편서사시 “금강”은 한국 문단을 대표할 만한 시편들이다.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과 4·19혁명’을 역사의 알맹이로 보고 그에 반하는 세력을 역사의 껍데기로 배척하는 문학세계를 구축하면서 남한 최초 저항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좌파문학을 추구하는 시인으로 지목되며 오랫동안 탄압을 받았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되며 본격적 연구가 되고 있다. 200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후 2013년 그의 생가터에 신동엽문학관이 개관되면서 이곳은 인문 기행의 중심이 되고 있다.

딸이 그린 신동엽 시인의 초상화
딸이 그린 신동엽 시인의 초상화

 

신동엽 시인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44년 부여초를 수석으로 졸업 후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친일파 청산에 항의하는 동맹휴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하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다. 스무 살이 되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민군과 국방군 사이에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게 된다. 1953년 단국대 졸업 후 돈암동 헌책방에서 일할 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인병선을 만나 평생 반려가 될 사랑을 키워간다. 1956년 결혼과 함께 대지로 귀의하고자 했으나 1958년 각혈을 동반한 병을 얻게 된다. 신동엽은 부여에서 요양생활을 하며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군의 대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다. 이후 1961년 명성여고 야간부 국어교사로 근무하면서 1969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부여가 자랑하는 3대 건축물 중 하나

신동엽문학관(부여읍 동남리 생가 옆)은 건축가 승효상이 신동엽의 시정신에 부합하는 조형물이 어떤 것이며 문학관이 갖춰야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건축예술로 펼쳐 보인 작품이다. 2012년 건립된 ‘신동엽문학관’은 시인의 시 “산에 언덕에‘를 형상화했다. 건축물 전체의 동선을 이끄는 것은 골목길 크기의 산책로인데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처음에는 건물 아래였다가 건물 위로 갔다가 다시 “산에 언덕에” 내려가는 느낌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최종적으로 그 골목길을 타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골목길 크기의 ‘뫼비우스 띠’가 건축을 구성하는 중심 동선이다.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산책길은 바로 옆에 물길이 따르고 있어 마치 부소산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시인의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주는 ‘신동엽 흉상’이 문학관 정 중앙 중정에 위치해 있다.
시인의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주는 ‘신동엽 흉상’이 문학관 정 중앙 중정에 위치해 있다.

 

겉에서 보면 수평과 수직의 구성물 같지만 실제로는 자연의 동선이 살아있는 공원처럼 조성돼 4월 하순이 되면 건물 뒤쪽으로 보이는 부소산과 문학관의 색채가 같아진다.

특히 신동엽문학관은 건립 중 발견된 마한시대 움집터를 현대적 공간에 소화해 냄으로써 고대의 문화유산을 현대 건축물 일부로 품어 안은 건축 예술이다.

부여가 자랑하는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건축전공자들의 주요 답사지로 부상되고 있다.

 

 

△문학관 주변 뛰어난 예술적 볼거리

임옥상 화백(부여 출신)의 설치미술 ‘시의 깃발’은 신동엽 시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학정신에 ‘역사의식’의 개념을 형상화 시킨 시인의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주는 ‘신동엽 흉상’은 건물의 정 중앙 중정에 위치해 있다. 본채 한쪽 모서리에 자리잡은 구본주 작가의 ‘쉿, 저기 신동엽이 있다’는 원작명이 ‘위기의식’으로 군부독재 시절 미술운동과 관련해 수배 중이던 긴장과 굳건함이 드러나 있다.

 

이 외에도 박영균의 ‘궁궁을을’, 전미영 ‘금강에 앉다’, 나규환 ‘발자국이 쌓여 길이 되었다’, 박영균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구본주 ‘미스터 리’(신동엽길 양쪽 출임구를 알리는 ‘아트 이정표’, 나규환 ‘바람의 경전’, 전미영 ‘별밭에서’ 등 문학관 주변에 설치된 조형 작품은 뛰어난 예술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발표한 신동엽문학관 관련 디카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학생들이 발표한 신동엽문학관 관련 디카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 신동엽 시인의 생애를 구성하는 유품들이 정리돼 있다. 초등학교 성적표와 반장 임명장, 시인이 읽은 책, 초고원고부터 발표지 등 수백 가지 유품들을 볼 수 있다.

김형수 관장이 신동엽 문학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형수 관장이 신동엽 문학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형수 관장 “백제 스토리 발전소 역할 해 나갈 수 있길”

개관 이후 부임해 9년 6개월째 신동엽문학관을 지키고 있는 김형수(59) 관장은 “문학이 태어난 장소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색의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신동엽 시인이 동학농민혁명을 서사시로 형상화함으로써 130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가 아닌 현재로 생생하게 살아있게 한 것처럼 소외된 부여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문학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백제 스토리 발전소 역할을 문학관이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동엽문학관 내부에 전시 중인 유품들.
신동엽문학관 내부에 전시 중인 유품들.

 

이어 “역사는 문학으로 형상화 될 때 대중과 공감하고 유기적으로 살아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 관장은 시인·소설가·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외 4권, 소설 “조드” 외 4권, 문익환 평전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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