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화된 섬에서 관광지로 재탄생한 나오시마

나오시마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미야노우라 항구의 '빨간 호박'.
나오시마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미야노우라 항구의 '빨간 호박'.

 

[동양일보 박은수 기자]“부질없어 보이는 것도 새로운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면?”

다카마쓰 항구에서 고속정을 30분 정도 타고 가면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나오시마섬에 도착한다.

이 섬은 영국의 유명 잡지 콘데나스트 트레블러(Conde Mast Traveler)가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7대 명소로 꼽기도 했다.

인구 4000여 명의 이 작은 섬이 왜 명소에 선정됐으며,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오도록 만들었을까.

주택이 늘어서 있는 나오시마 혼무라지구의 부둣가. 한적해 보이지만 이 곳에서 해외 관광객들이 종종 포착됐다.
주택이 늘어서 있는 나오시마 혼무라지구의 부둣가. 한적해 보이지만 이 곳에서 해외 관광객들이 종종 포착됐다.

 

1917년 미쓰비시 중공업 금속제련소의 입성으로 호황을 누렸고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제 몫을 하고 있던 나오시마.

경기침체, 구리 가격 폭락 등으로 섬 주민들은 이곳을 떠났고, 남은 것은 중금속 폐기물과 각종 쓰레기뿐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 섬의 변화는 베네세 홀딩스 후쿠다케 쇼이치로(福武長一郞) 이사장을 만나면서부터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의 외관. 미술관과 호텔을 일체화 시킨 종합 공간이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의 외관. 미술관과 호텔을 일체화 시킨 종합 공간이다.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쇼이치로(福武長一郞) 회장은 “나오시마섬을 변화시켜 보자”고 결심하고 평소 ‘예술적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철학을 바탕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업 지원, 자연과 예술작품의 조화, 지역재생 성공 결과물인 '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라는 예술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됐다.

베네세 홀딩스와 후쿠타케 재단이 함께 한 이 프로젝트에서 후쿠다케 소이치로 이사장은 선대 회장의 뜻을 받아 나오시마 섬에 어린이들을 위한 국제캠프장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베네세하우스와 지중미술관, 이우환미술관, 이에 프로젝트 등을 추진했다.

지중 미술관 매표소. 이 곳에서 300m정도 걸어가면 땅 속에 있는 지중 미술관을 구경할 수 있다.
지중 미술관 매표소. 이 곳에서 300m정도 걸어가면 땅 속에 있는 지중 미술관을 구경할 수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버려진 섬을 살려보자고 제안, 섬 곳곳에 미술관과 조형물을 조성키로 했다.

‘있는 것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기조 아래 나오시마섬은 현대 예술의 성지로 탄생하는 과정을 가졌다.

베네세 그룹은 1992년 베네세하우스뮤지엄을 개관해 자연과 문화를 연결시키고자 했다.

2010년 개관한 이우환 미술관.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베니스베엔날레에서 이우환의 전시를 본 것이 설립의 계기가 됐다.
2010년 개관한 이우환 미술관.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베니스베엔날레에서 이우환의 전시를 본 것이 설립의 계기가 됐다.

 

1997년에는 오래된 민가를 개조해 현대미술작품으로 바꾸는 ‘이에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어 2004년에 수많은 관광객들을 ‘땅 속’으로 초대하고 있는 ‘지중 미술관’을 설립했으며 이어 ‘아이러뷰유’ 목욕탕, 이우환 미술관이 등장하게 됐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입구.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입구.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자연·건축·예술의 공존을 콘셉트로 나오시마섬 남부 언덕에 세워졌다. 베네세하우스뮤지엄은은 상설 작품과 많은 예술가들의 현장 고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지중 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 사이에 조성된 나르시즘 정원(Narcissus Garden). 수많은 미러볼들에 비춰진 자신을 응시하면 나르시즘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지중 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 사이에 조성된 나르시즘 정원(Narcissus Garden). 수많은 미러볼들에 비춰진 자신을 응시하면 나르시즘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지중 미술관은 안도 다다오가 직접 설계해 기하학적인 독특미가 엿보인다.

지중 미술관에는 클로드 모네, 윌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만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세계적인 거장 이우환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우환 미술관’.

경남 출신인 이우환 작가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 나타난 모노파의 선도적인 역할을 한 작가다. 다마 미술대 명예교수, 세계문화상 회화부문 수상, 구겐하임 미술관 무한의 제시전, 베르사유 궁전 이우환전을 여는 등 세계적인 작가다. 작가는 이우환 미술관에 옥외 작품 관계항-점선면, 관계항-대화, 관계항-휴식 또는 거인의 지팡이, 무한문, 톨로에도 관계항-표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실내작품은 조응의 광장, 만남의 방, 작은 방, 침묵의 방, 그림자 방, 명상의 방에 관계항 등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나오시마에는 작은 미술관과 외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에프로젝트의 첫번째 작품인 '카도야'. 목조 건물을 들어가면 카도야만의 독특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에프로젝트의 첫번째 작품인 '카도야'. 목조 건물을 들어가면 카도야만의 독특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과 함께 나오시마의 섬 동쪽 오래된 마을을 살리기 위한 ‘이에 프로젝트’도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카도야의 '시간의 바다'라는 작품. 각 숫자가 변하는 속도는 섬 주민들이 직접 정할 수 있다.
카도야의 '시간의 바다'라는 작품. 각 숫자가 변하는 속도는 섬 주민들이 직접 정할 수 있다.

 

1997년에 시작한 '이에 프로젝트'는 폐가가 늘면서 나오시마 마을 동사무소에서 베네세 홀딩스에 도움을 요청해 시작됐다. 1998년 카도야를 시작으로 미나미데라, 긴자, 고오진자, 하이샤, 고카이쇼, 이시바시까지 7개 집이 참여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7곳의 이에프로젝트 가옥 중 한 곳인 하이샤. 과거 치과로 운영됐던 건물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7곳의 이에프로젝트 가옥 중 한 곳인 하이샤. 과거 치과로 운영됐던 건물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에 프로젝트’를 통해 옛것에 새로운 것을 접목시키자는 아이디어를 기초로 기존 외형은 손대지 않고 내부를 아트공간으로 꾸며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하이샤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오마주한 작품이 1층에서 2층을 관통한 채 전시돼있다.
하이샤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오마주한 작품이 1층에서 2층을 관통한 채 전시돼있다.

 

200년 가까이 된 집을 복원한 ‘카도야’는 이에프로젝트의 첫 발걸음이었다.

이에프로젝트 '고카이쇼'. 이곳에 살던 집주인이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종종 바둑을 두곤 해 건물 이름을 '기원'이란 뜻을 담아 '고카이쇼'로 정했다.
이에프로젝트 '고카이쇼'. 이곳에 살던 집주인이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종종 바둑을 두곤 해 건물 이름을 '기원'이란 뜻을 담아 '고카이쇼'로 정했다.

 

실내에는 125개의 LED등으로 만들어진 숫자가 욕조 안에서 1~9까지 카운트되며 반짝이고 있었다. 카운트 되는 속도는 제각각 다른데, 주민들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유롭게 속도 설정에 참여한다. 제작 당시 섬 주민 125명이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기업과 마을 주민 모두가 한데 모여 ‘예술 마을’을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당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 이 섬에는 관광객이 없었다. 현재는 연간 8만~1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고카이쇼에는 건축물 내부에 목조로 된 동백꽃과 대나무 조각 작품이 있다.
고카이쇼에는 건축물 내부에 목조로 된 동백꽃과 대나무 조각 작품이 있다.

 

‘이에 프로젝트’는 관람 시간을 오후 4시 30분까지로 제한했다.

행여나 관광객들의 발걸음에 주민들의 편안한 저녁시간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에 대해 후쿠다케 재단의 카사하라 류이지(笠原良二) 사무국장은 “베네세의 예술관들과 이에 프로젝트는 ‘문화재로서 보존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운영되지 않는다”며 “그렇게 되면 지역이 품고 있는 보통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는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프로젝트 이시바시의 '폭포'. 작품의 폭이 15m에 달한다.
이에프로젝트 이시바시의 '폭포'. 작품의 폭이 15m에 달한다.

 

그는 “별개의 홍보를 한 적은 없었지만 한 분 두 분씩 방문하던 사람들의 입소문에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다”면서 “지금은 SNS가 등장해 더 많은 외지인들이 찾고 있다”고 했다.

이에프로젝트 '이시바시' 목조 건축물(왼쪽). 에도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 전반 무렵, 나오시마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큰 집이었다고 한다.
이에프로젝트 '이시바시' 목조 건축물(왼쪽). 에도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 전반 무렵, 나오시마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큰 집이었다고 한다.

 

카사하라 사무국장은 또 “더 많은 관광객 유치 노력보다 마을이 가진 정을 느끼고 거주지를 나오시마로 옮기는 청년층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창업을 시도하는만큼 적극 지원해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나오시마가 문화예술의 섬으로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은수 기자 star014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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