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참 많이 덥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일상이 되었고, 사이사이 내리는 집중호우는 이미 우리가 아열대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서도 예외를 찾기 어렵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한반도 전역이 그러하고, 남극에서 북극까지 지구촌 전체가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눈 축제로 유명한 이웃나라 일본의 삿뽀로에서는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아 축제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기후위기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기도 하고 우리 또한 익숙해져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어떤 자리에서는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는 항변을 듣기도 했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다. 이 극한 더위에도 한낮에 휴지를 줍고 농사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여름휴가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찜통더위를 견디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후위기 이야기는 사치스런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여건이 좋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의 피해가 더 크고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데서 생긴다. 그나마 여건이 좋은 사람들은 에어컨을 방마다 설치해서 더위를 견딜 수 있는 데 비해, 전기료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선풍기로 견디거나 에어컨을 틀었다가도 금방 끄고 만다. 이런 더위는 겨울의 극심한 추위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일상 속으로 들어온 폭염은 두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세운다. 하나는 폭우와 가뭄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외적 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불쾌지수를 높임으로써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 공격이다. 우리가 최근 경험한 폭우로 인한 사고와 ‘묻지마 살인’은 그런 공격들에 개인과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이런 비극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 악화와 그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능, 우리 자신의 무관심 등이 얽힌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기후위기라는 현상의 실제와 원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위기 현상의 과장도 축소도 모두 해결 또는 해소를 위해서는 장애물이 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조금 과장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실천가들이 있는데, 그런 태도 또한 지속되면 불신을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위기를 바라보면서도 극단적인 형태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만 찾으면서 축소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위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이 기후위기와 관련성을 지닐 수 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위기 극복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는 물론 공기와 물 같은 무생물과의 긴밀한 관계맺음을 통해서만 그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공기가 없어서 숨을 쉬지 못하면 거의 대부분의 생명은 이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시안적인 합리성을 판단의 절대적 준거로 삼게 된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참 어리석고 오만한 모습이고, 우리도 근대화 과정에 열심히 동참하면서 오히려 더 극단적인 모습을 지니게 되고 말았다.

이제는 정치도 경제도 이 기후위기를 출발점으로 삼아야만 한다. 정치의 첫 번째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기후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와 법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어야 하고, 경제의 목표 또한 무한한 성장 이데올로기의 미망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 길에 동참하는 기업을 알아보고 키워주는 것은 우리 시민들이고, 그런 정치인을 찾아내 일을 맡기는 것도 우리 자신들이다. 책임이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어리석음으로 악화된 요즈음의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바로 우리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이다. 이번 비극이 그런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팔월이 어렵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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