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직업이나 일터에는 남들이 척 하면 그 가치를 알아주는 것들도 있지만 ‘그게 뭐하는 거(데)냐?’며 묻는 것들도 있다. 필자가 일하는 충북여성재단이 그런 일터 중 하나일 것이다. 여성재단이 뭐하는 곳이냐는 물음은 순수한 궁금증만 아니라 도대체 그런 게 뭣 때문에 필요하냔 의심도 들어 있다. 홍보를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결심하면서도, 어차피 알아줄 걸 기대하고 하는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기도 한다. 여성재단만 아니다. 사회변화를 위한 노력, 특히 성평등을 위한 실천과 노력은 거의 이런 의심의 대상이었다. 여성단체에서 일할 때에도 여성학을 전공할 때에도 좋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게 뭐냐고? 그게 왜 필요하냐고? 그런 질문들로 이루어진 긴 숲을 걸어온 느낌이다.

80년대 여성단체들은 사업비를 만들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다. 그 중 일원으로서 주변에 후원회원을 권유하다 숱하게 거절 당했다. 거절이야 할 수 있지만 꽤 가깝던 친구가 “여성운동이 무섭다”고 말할 때는 깊이 서운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너희들은 굳이 세상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냐던, 중뿔나게 유난스럽고 괴상하게 구냐던, 익숙한 비난이 상기되어서. 그냥 싫다고 하지, 무섭다니, 머리에 뿔달린 괴물로 비친 듯했다.

여성학 전공자로서 여성학이 학문이냐는 질문부터, 여성학은 너무 어려워서 잘못되었다는 비판까지 상반된 타박을 듣기도 했다. 지금 우리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박사연구자들이 왜 멀쩡한 전공을 놔두고 굳이 성평등 관점을 요구하는 여성재단에서 일 하냐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시도연구원 박사들보다 현저히 낮은 처우를 받으면서. 여성재단에 일하면서 ‘여성’이라는 단어에 붙어 있는 ‘사소함’의 이미지, 여성이 다수인 조직의 특성을 소위 ‘여성성’의 문제로 돌리는 젠더 편견도 겪게 된다.

여성정책의 많은 부분은 공무원이 직접하기 어려운 성폭력·가정폭력 상담, 성평등 문화확산과 교육사업 같은 것들이다. 이에 여성시민단체들에게 사업비 보조금을 주거나 사업 자체를 위탁하여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여성단체들의 역량이 좋아야 도민들이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충북지역의 대학에는 여성연구소가 없고, 여성학 프로그램도 없다. 여성단체들과 여성지도자들이 성장하기에 어려운 조건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많은 활동가들이 일해 왔다.

이들이 외롭고 지치지 않도록 네트워킹하고 사업역량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충북여성재단의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 재단은 성희롱 고충상담원 교육도, 가정폭력·성폭력상담원 역량강화 교육도 한다. 풀뿌리 소모임도, 청년활동가도 키운다. 주말에도 저녁에도 사업을 한다. 학교 가기 전 아이들을 둔 직원들이 하는 일이다.

다음 세대의 활동가와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언제까지 서울에 가서 교육받고 서울의 강사들을 모셔 와야 하는가. 전문인재 교육을 하고 있노라면, 교육만 하지 말고 재미 있는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광역시와 달리 광역도에서의 사업은 지역이 넓어서 하기 어렵다. 여성단체들의 활동력이 미약한 지역은 지역민들이 성평등 문화를 접하기 어렵다. 충북여성재단은 시나 군 지역을 찾아다니며 교육과 문화사업을 한다. 직원 혼자 도구를 잔뜩 싣고 출장을 나간다. 인원이 적어 여러 명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 시군 사업을 하고 저녁과 주말 프로그램을 하는 와중에 충북여성재단은 요즘 뭐하냐는 청주시민의 이야기를 또 듣는다. 

이렇듯 충북여성재단은 성평등 전문가도 기르고, 청주와 시군에서 교육도 하고 재미있는 사업도 펼치라는 요구를 받는다. 작년보다 예산은 줄었는데, 할 일은 점점 많이 보인다. 저녁에, 토요일에 할 사업을 계획하며 열정을 불태우는 직원들 덕에 많은 일들이 돌아간다. 하지만 처우를 개선하고 인원을 늘리는 일에 성과가 미미한 관리자는 매일 고민스럽다. 충북여성재단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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