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균형 발전, 지역이 살아야 한다

49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인 카미야마초. 해발 1000m에 위치한 마을의 골목에는 작은 상점가와 위성사무실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49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인 카미야마초. 해발 1000m에 위치한 마을의 골목에는 작은 상점가와 위성사무실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동양일보 박은수 기자]고령화율 54%, 4900명이 살고 있는 일본의 시골 마을. 이곳에 기업들이 발을 뻗고 고학력의 청년들이 문을 두드린다. 특별한 보조금도 없는데 유럽에서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오고 있다. 납득이 어렵지만 사실이다.

카가와현 다카마쓰시에서 1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아와이케다역에 도착, 그 곳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이시이역에 도착하니 택시 정류장이 있었다. 30분간 산을 넘고 터널을 지나서야 비로소 도쿠시마현 내 카미야마초(神山町)에 입성할 수 있었다.

카미야마초는 해발 1000m의 산지에 둘러싸인 조용한 마을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어떤 부분이 지방 창생의 성지로 거듭났다는 것인지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경관 자체가 카미야마초만의 강력한 자산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카미야마초의 한적한 거리.
카미야마초의 한적한 거리.

 

카미야마초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역 쇠퇴 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는 100여 년 전 푸른 눈의 ‘미국산’ 인형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인형은 1927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어느 마을 주민들이 양국 간 평화의 증표로 일본 전역의 초등학교에 전달했다.

카미야마초에는 1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인형을 국제교류협회의 설립자 오오미나미 신야가 발견했다.

해외이동이 자유로워진 1991년 마을 주민들은 협회의 주도 아래 방문단을 구성, 미국 뉴욕을 찾아가 인형을 돌려줬고 ‘미국산’ 인형은 그렇게 64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그린밸리의 사무국 내부. 10여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린밸리의 사무국 내부. 10여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때부터 카미야마초의 혁신이 시작됐다.

이듬해 결성된 ‘카미야마 국제교류협회’는 미국의 원어민 교사와 해외 예술가들을 마을에 초청하고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린밸리 사무국에는 카미야마초에 들어선 위성오피스들의 로고가 전시돼 있다.
그린밸리 사무국에는 카미야마초에 들어선 위성오피스들의 로고가 전시돼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카미야마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외 예술가들을 카미야마로 초청해 거주와 예술활동을 지원했다.

예술가들은 카미야마초에 체류하며 지역민들과 소통을 이어나갔다. 자연을 벗 삼아 예술적 영감을 얻은 이들은 마을 곳곳에 작품을 전시했다.

지난 6월 1일자 카미야마초 지역 신문 1면에 위성오피스 'SanSan'의 대표 테라다 치카(寺田 親弘).
지난 6월 1일자 카미야마초 지역 신문 1면에 위성오피스 'SanSan'의 대표 테라다 치카(寺田 親弘).

 

정부로부터 5년간 사업을 지원받은 협회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2004년 비영리법인(NPO) ‘그린밸리’를 창설했다.

그린밸리는 마을 내 빈 집이 생기면 이주자에게 그 집을 중계·임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 깨끗한 녹지와 자연을 간판 삼아 이주교류센터를 운영했다.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우선시됐지만 유통·제조업으로 이름난 도쿠시마시와 차량으로 30분 거리였기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마을을 찾았다.

카미야마조 위성 사무실 중 하나인 엔가와. 현재 2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카미야마조 위성 사무실 중 하나인 엔가와. 현재 2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2010년 명함 데이터를 관리하는 회사인 산산(SanSan)이 카미야마초에 위성사무실을 설립했다. 이후 도쿄와 오사카 등의 IT벤처기업이 차례로 사무실을 내기 시작했다. 현재는 16개의 위성사무실이 들어섰다.

당시 카미야마초는 통신선을 설치하기에 매우 편리한 조건을 갖췄다. 이미 2005년 정부의 시범사업 당시 고속인터넷이 마을에 탄탄하게 설치됐고 위성오피스가 들어올 부지가 넉넉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직원들은 혼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삶의 질 상승에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창업 인재 육성에도 힘쓰고 있는 그린밸리는 ‘카미야마쥬쿠’ 프로그램을 통해 구직자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한다.

전국단위로 청년들을 모집해 카미야마 고유의 현장에서만 할 수 있는 학습을 특강·워크숍·액티비티·세미나 등을 진행한다.

카미야마초의 시가지는 이면도로 도처에 상점, 카페, 갤러리, 위성 사무실 등 자그마한 목조 가게들이 즐비하다. 여러 외국인들이 일본 전통 가옥에서 아기를 안고 나오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사토 히데오(佐藤英雄) 카미야마 국제교류협회 부회장.
사토 히데오(佐藤英雄) 카미야마 국제교류협회 부회장.

 

취재진은 카미야마초 중심지 부근에서 사토 히데오(佐藤英雄·70) 부회장을 만났다. 그린밸리의 창립자 중 한명인 사토 히데오 부회장은 “현재 5000여 명의 마을 주민 중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주민이고 보육원의 80%가 이주민의 2세로 평균 연령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숙제가 무엇인 지에 대한 물음에 그는 “새로 유입되는 예술가와 교사들이 거주할 수 있는 가구를 확보하려 한다”고 했다. 새로 집을 지으면 해결될 문제지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카미야마초의 역사가 묻어있는 기존 집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현재 유기농 음식 개발·판매를 하는 ‘셰프 인 레지던스’를 기획 중“이라며 ”뉴욕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이주민들이 카미야마초에서 음식을 배우며 새로운 가치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사토 히데오(佐藤英雄) 카미야마 국제교류헙회 부회장과 취재진은 카미야마초의 '아트 인 레지던스' 프로젝트가 과거에 진행됐던 현장을 찾았다.
사토 히데오(佐藤英雄) 카미야마 국제교류헙회 부회장과 취재진은 카미야마초의 '아트 인 레지던스' 프로젝트가 과거에 진행됐던 현장을 찾았다.

 

그는 “최근에도 독일인 4명이 찾아오고 오는 8~9월에도 3명의 외국인이 이곳을 방문해 프로그램을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카미야마초 마을 내부뿐 아니라 산에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산재해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많은 작품들은 이 곳을 찾는 이들의 방문 코스가 되고 있다.

1927년 미국 펜실베니아 마을 주민들이 일본에게 평화의 증표로 보내준 파란눈의 인형이 사토 히데오(佐藤英雄)의 명함 뒷편에 그려져 있다.
1927년 미국 펜실베니아 마을 주민들이 일본에게 평화의 증표로 보내준 파란눈의 인형이 사토 히데오(佐藤英雄)의 명함 뒷편에 그려져 있다.

 

카미야마초는 이렇게 해외 작가들의 작품 전시장이 되기도 한다.

지방 소멸, 고령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에서 카미야마초의 변화와 발전은 전국에서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청년들이 꿈을 안고 찾아오도록 하면서, 기업들은 흔쾌히 지점(지부) 사무실을 차리도록 한다.

'아트 인 레지던스'의 작품 중 하나. 예전에는 작은 도서관으로 쓰였다고 한다.
'아트 인 레지던스'의 작품 중 하나. 예전에는 작은 도서관으로 쓰였다고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외국인들이 거주를 목적으로 찾아오고, 자녀들의 교육도 전문학교(고등학교)까지 세워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네덜란드 예술가 카린 반 데 몰렌의 작품 '천국에 있는 것처럼'. 아트 인 레지던스 작품의 일환이다.
네덜란드 예술가 카린 반 데 몰렌의 작품 '천국에 있는 것처럼'. 아트 인 레지던스 작품의 일환이다.

 

한편으로는 마을이 예술작품의 전시장이 돼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기도 한다.

카미야마초 마을 주민들은 한마음이 돼 마을의 화합과 성장을 함께 일구고 있다.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의 변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박은수 기자 star0149@dynews.co.kr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