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증평문인협회

김미경 증평문인협회장

[동양일보]계절은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다. 하늘도 푸르다. 비 온 뒤라 오늘따라 날이 더 쾌청하다.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힐링캠프. 충남 보령으로 내달렸다. 바다도 보고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갯벌체험도 해볼 요량이다.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하니 바로 물때가 맞아 급히 리조트에 짐을 풀고 갯벌로 향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왔지만 체험장에 들어서니 모든게 구비되어 있었다. 아이들 노는거나 지켜 봐야지 했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어느새 빨간색 장화에 얼룩무늬 챙이 큰 모자에 장갑, 호미, 양파자루까지 들고서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여한 똑같은 복장들을 하고 빨간 깃발이 꽂혀있는 길을 따라 안전하게 걸었다. 일곱 살 손자와 한조가 되었는데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몰랐다. 한쪽에서는 호미로 뻘을 파고 있었고 우리는 돌멩이를 호미로 걸어서 뒤집었다. 게들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갔다. 순식간에 숨어 버리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큰 돌을 뒤집을 땐 손자가 힘을 보태 주었다. 기특하고 든든하다. 한 손엔 자루를, 한 손엔 호미를 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이는 양쪽 자루를 번갈아 보면서 부러운 눈치다. 이번엔 손주 자루에 잡은 게를 넣어주자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며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웃음도 나고 착하기도 한 모습에 힘든 것도 잊었다. 나는 게가 기어올라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툭툭 쳐서 떨어지게 하라고, 도망 못 가게 입구를 꽉 잡으라고 성화를 댔다. 한동안 나는 게잡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늘 이 갯벌의 게를 다 잡지 않으면 안될 요량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서로의 자루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을 무렵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있는 손자에게 이리로 오라고 소리치면서 돌아서니 양파 자루를 뒤집은 채로 툴툴 털고 있는게 아닌가! 너무 뜻밖의 광경에 잠깐 당황하다 ‘뭘 하는거지? 내가 뭘 잘못 봤나?’

집에 가라고, 빨리 가라고, 엄마테 가라고, 게들을 보내줬다는 것이다.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 고맙다고 할 때 이미 울고 있었다는 걸 몰랐었다. ‘어떡하지?’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는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장갑을 벗고 작고 하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상처받은 가슴을 다독였다. 어른으로서 보여준 행동이 너무 부끄러웠다. 도망치는 게들을 빨리빨리 잡아서 자루를 채울 생각만 했고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이라고, 기어오르는 놈은 호미로 툭 쳐서 못나오게 하라고, 이 갯벌에 사는 것들을 모조리 다 잡을 요량으로 한동안 정신이 팔렸던 내가 참 어이없었다. 부끄러웠다. 미안했다. 남은 자루에 게도 풀어주었다. 어린 손자에게 보여준 행동을 어떡하면 빠른 시간에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 후회하고 또 후회를 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물구덩이에 물장구를 치며 한참을 놀았다. 사람들이 훑고 간 갯벌을 천천히 걸으며 상처 난 마음을 보듬어 주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보이지않던 돌 틈엔 여러가지 갯벌에 사는 친구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작은 따게비들, 숨구멍을 따라가니 조개가 숨어있고 새우, 고동, 갯강구들을 만났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아쉽지만 체험장이라 여러사람이 밟고 헤집고 간 자리여서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다음엔 바다에 사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갯벌체험 점수는 낙제점을 받았을지언정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시원하고 여유로운 곳에서 나의 특별한 생일을 만들고자 온 가족이 맘 먹고 온 곳이다. 행복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이 보다 더 좋은 생일 선물이 또 어디 있으랴!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커줄 나의 희망이 여기 있음에 세상 행복하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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