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중 주지스님

[동양일보 박유화 기자]1500여년 전(6세기) 백제사비 시대 수도 부여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된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사적 제4호 가림성)자락에 세워진 오랜 천년고찰 대조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백제시대(527년) 창건된 대조사는 오랜 천년 고찰로 백제사비 시대 백성들의 불심을 일깨우며 백제불교신앙의 상징으로 여겨 온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217호) 있어 더욱 유명하기도 하다.

대한불교조계종 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인 이곳 대조사는 인도에 가서 범본(梵本)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와 백제 불교의 방향을 달리한 겸익(謙益)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적기에 기록된 현판에 따르면 이 사찰은 527년 담혜(曇慧)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창건주에 대한 설은 다소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6세기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조사는 고려 원종 때 진전장로(陳田長老)가 중창하고, 1989년 명부전, 1993년 종각, 1994년 미륵전을 각각 신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연암석을 다듬어 세워진 대웅전 곁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높이 10m로 크기는 다르나 논산 관촉사 미륵대석불상(보물 218)과 유사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용화보전, 명부전, 산신각,요사 등이 있다.

이곳 사찰 원통보존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조사 석탑(충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은 당초 옥개석(屋蓋石)만 남아 있었으나, 1975년 옥신(屋身)이 발견돼 복원됐다.

각종 전설과 설화가 서려 있는 이곳 사찰은 ‘한 노승이 큰 바위 밑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아 온 관음조 한 마리가 바위에 앉자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더라’는 전설에 따라 사찰 이름에 鳥(새)자를 넣어 ‘대조사’로 명명 부르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중 주지스님은 “백제시대 인도에서 경전을 가지고 와 이를 번역하고 편찬한 겸익 스님이 수행하며 머믈었던 이곳 대조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성지순례지로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논산 관촉사 미륵보살상(국보 323호)은 60여년 전 보물로 지정된 대조사 미륵상보다 늦게 보물로 지정됐으나 5년 전인 2018년 국보로 승격 지정됐다”며 대조사 미륵상의 역사적 의미와 가지를 설명하며 국보 승격의 당위성를 역설했다. 부여 박유화 기자 pyh566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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