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김윤식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동양일보]진료를 하다보면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분들이 너무나도 즐겨하는(?) 표현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죽겠다’는 말이다.

아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미안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행복해 죽겠다, 웃겨 죽겠다, 좋아 죽겠다 등등.

그렇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좋으나 싫으나 ‘죽겠다’라는 표현을 밥 먹듯이 하는 민족이었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그것이 과장의 표현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 정도이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은 죽겠다의 어감을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진료실은 한 가지 원칙이 존재한다. 가능하면 부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분이 부정적인 말, 특히 ‘죽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대부분 웃고 지나가긴 하지만 어떤 분들은 다음부터 그런 말 쓰지 않겠노라고 돈 만원을 흔쾌히 내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 보니 많은 분들이 죽겠다는 표현을 하려다가도 살겠다로 바꾸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전에 진료했던 환자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중풍을 앓은 지 2년이 경과된 여자 환자인데 대학병원 등 여러 군데 의료기관을 다녔고, 어지럼이 심하고 양측에서 부축을 해야만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환자였다.

“이곳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병원이니 이제 치료되지 않으면 난 그냥 죽어버릴 거야.”

첫 방문 시 환자분의 엄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걱정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드릴께요. 좋아질 거예요.”

보호자에게 입원을 권유했으나 환자가 입원생활에 지쳐 대구에서 통원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환자나 보호자의 열심이 특심이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통원 치료를 다니는 횟수가 늘어감에도 그 환자에게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지났을 때에도 낫지 않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환자의 모습에서 느껴졌다.

“오늘은 어떠세요?”

“그대로예요. 안 나으려나 봐요.”

“그래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조금 나았어요’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꺼예요.”

“네, 교수님 말대로 곧 좋아질 것이라 믿어요.”

다른 의료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환자를 진료하며 가장 힘들 때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차도가 보이지 않을 때이다. 그럴 때면 내가 치료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병이 만성화되어서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한번 쯤 고민을 하다가도 ‘아니야, 잘 될거야.’라고 생각을 바꾸어 진료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날 아침에도 그 환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은 어떠세요?”

“조금 나아요.”

“가르친 보람이 있네요. 대답하신 대로 아마 곧 나을 겁니다.”

“선생님, 진짜로 조금 나아졌어요. 선생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그러고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두 분의 보호자가 부축하던 것을 한 분이 부축하는 것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제 부축 없이 걸어오기 시작하더니만 급기야는 썬글라스를 쓰고 당당하게 혼자 통원치료를 오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조금 나았어요’라고 말해보라고 할 때부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필자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수년 전 베스트셀러로 대한민국과 전세계를 휩쓴 조엘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자. 또한 위약(플라시보)의 라틴어 뜻인 ‘마음에 들다’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기 바란다. 약의 효과를 믿는 사람들에게 플라시보가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2016년의 연구 결과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수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밝은 미소와 웃음, 박수를 유도하는 높이뛰기 선수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그는 긍정과 행복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우상혁 선수이다. 얼마 전 진행했던 그의 인터뷰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있다.

“올림픽때 저의 금메달을 다른 선수에게 잠시 맡겨 놓았으니 이번에는 제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긍정의 힘이 세계 랭킹 1위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확신한다.



자, 이제 크게 한번 외쳐보자.

“잘 될거야! 내 병은 나을거야! 회복 될거야!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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