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게 하는 열대야와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한낮 더위가 번가르며 우리를 괴롭힌다. 거기에 대낮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거나, 동네 산책길에서 성폭행을 시도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들 소식이 더해져 마음이 어수선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총기 소지를 엄격히 금지하는 우리는 최소한 이런 두려움으로부터는 자유롭다고 생각해 왔는데,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학교 또한 심상치 않다.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과 일상화된 ‘아동학대 신고 위협’으로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교사들이 많다.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장애학생을 일반학급에 포함시키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담임교사의 고충은 외면해버려 폭행과 폭언 앞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최소한 그 장애학생만을 담당하는 보조교사가 있어야 하는데 교사의 헌신만 요구하다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어 놓고 만 셈이다.

교육은 어떤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총체적이고 협력적인 과업이다. 우선 부모와 교사가 협력해야 하고 사회와 언론이 협조해주어야 한다. 이 주체들 사이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교육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런 관계망들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거나 아예 적대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불신하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에 눈감는 일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망은 교육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인 안전감에 기반한 행복 추구는 믿고 맡길 수 있는 관계망을 전제로 한다. 그 관계망의 뿌리는 가정이고, 이 가정은 혼례와 출산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가족에서 신뢰와 계약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것까지로 확장되어 있다. 태어나서 긴 시간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 동물’은 바로 그 이유로 교육을 받아야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교육적 존재’로 자리매김 되었다.

요즈음에는 교육은 곧 학교교육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과 시기를 감안해보면 자연스런 일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교육이 곧 학교교육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아이는 먼저 집에서 잠을 자고 먹고 또 관계를 맺는다. 몸의 성장에 필요한 음식과 정신의 성숙에 필요한 정서적 지원과 응원, 사회규범을 몸에 새길 수 있는 적절한 칭찬과 처벌 경험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곳이 가정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가정은 물론 친척, 친구들과도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부모 또는 보호자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보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의미의 가정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저 자신의 아이가 기(氣)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신념으로 무장한 ‘추하고 어리석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본 결과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이다. 자유주의는 우리에게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지상의 목표였다. 그러나 그 자유주의는 내 자유와 권리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그것도 중요하다는 전제가 있을 때라야 비로소 존속할 수 있는 것임을 알지 못했거나 일부러 무시했는지 모른다. 

눈앞의 이익을 망설이지 말고 택하라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주장을 굽혀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비교육적인 가정교육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함께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우리는 때로 손해볼 줄도 알아야 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내 이익도 커질 수 있고, 내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과 만날 수도 있다. 부채로 파리와 모기를 쫒아주시며 때로 손해 보는 듯이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자애로운 눈빛이 떠오르는 팔월이 저물고 있다. 이 더위도 멀지 않아 수그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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