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동양일보]우리에게는 당연히 곁에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봄이 오면 그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알려주던 제비를 이제는 도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도대체 제비를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작년 연말 베트남에 갔다가 곳곳에서 제비를 보면서 속으로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너희들이 여기에 와 있었구나, 라며 살갑게 인사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토종벌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제초제 사용으로 농사의 소출은 많아지겠지만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벌들의 생태기억력을 빼앗아서 소멸의 위기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어려서 시골 친척집에 가면 쇠똥구리, 방개, 하늘소 등 딱정벌레류를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오래 전 곤충채집 숙제를 했던 생각이 나서 사라지는 딱정벌레들을 그림으로라도 보려고 딱정벌레 도감을 한 권 사서 사무실 책상 위에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힐링용으로 들춰본다. 예전에 참 많이 보던 것들인데 이제는 사라졌구나, 라는 생각에 젖는다. 대기오염에 민감한 이끼를 보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어린아이도 쉽게 잡던 아름다운 반딧불이를 이제는 만나기 어려워 환경이 잘 보존된 외국에 관광을 갔다가 더 쉽게 보는 시대다.

눈으로 보는 자연생태계의 동식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상호 존중하는 예의가 무너졌다,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도덕적 관념들이 사라진다, 희생정신이 없어졌다, 유대관계가 희석되고 있다, 이런 말들이 이제는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는 시대이다.

독일에 갔다가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머물렀다. 경유만 해야 해서 저녁 식사 후 역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나갔다가 역 밖의 지저분하고 무서운 환경에 놀라 역사 안으로만 걸어서 부리나케 숙소로 들어오고 말았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치안의 안전함과 분실물이 보존되거나 찾는 것을 보고 놀란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누군가가 다가와 돕는다. 이번에 잼버리대회가 큰 위기를 만났다가 온 국민의 관심과 배려 속에 대과없이 마치면서 그 모범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선한 일들 속에서도 예기치 못한 묻지마 폭행이 발생해서 시민을 두렵게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지나친 교권침해로 교육현장이 붕괴되어 이제 존경이나 존중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 모든 것들 – 자연환경과 생태계, 인간관계, 사회적 질서 등이 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고 믿으면서 피조물은 임계점에 이르면 소멸되고 하나님만 영원하시다고 믿는다. 그런 신앙고백 속에서는 사라지는 것들, 혹은 현상에 변화가 오는 것들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것은 이제 사람도 소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다. 인구감소, 인구절벽 등의 소리를 듣는다. 물론 전 지구적으로 아직도 인류는 감당하기 어려운 인구 증가의 문제에서 해방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함께 가야 할 동족 혹은 민족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의 사이, 사람과 역사의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가치 또는 의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정작 사라져야 할 것들 – 거짓과 위선, 폭력과 파괴, 부정과 부패, 부정의와 불공평, 전쟁과 폭력,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소식이 들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선한 것들이 사라지고 부조리한 것들만 확장되거나 활성화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결국에는 ‘나’도 사라지겠지만 가치관, 역사, 인류애, 사랑 등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고대 스토아철학자 아리우스는 네 가지 덕목을 제시하면서 절제를 중요하게 넣었다. 선한 것들의 사라짐을 막기 위해 오늘도 한 가지는 절제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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