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동양일보]선선한 가을이 찾아온다는 처서가 지났지만 더위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기후위기로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무더위로 불쾌지수는 높고 일상이 고행이다. 이 와중에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 소식을 접한다. 교도통신은 24일부터 하루에 460t씩 17일 동안 7800t의 오염수를 방류하고 이후 올해는 네차례에 걸쳐 전체 오염수의 2.3%인 총 3만1200t을 내보낸다고 보도했다. 최소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방류될 막대한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는 물론 인근 국가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것은 자명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오염수는 일본이 끝까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핵폐기물임에도 일본은 무책임하게 해양투기 강행을 결정했다. 더 황당한 일은 국민 80% 이상이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오히려 원전 오염수 안전성을 홍보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저곳 가뜩이나 불안한 형국에 정말 화가 치민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누가 지키는가.

엊그제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런데 도로가 꽉 막혀 차가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사고가 났나 아니면 이 장대비에 토사가 흘러내렸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앞차를 따라갔다. 고가차도에 막 진입했는데 여전히 그 앞은 더 막혀있다. 순간 막힌 공간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갑자기 숨이 가빠짐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송지하차도 침수로 아까운 생명을 잃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대한민국 안전의 현주소이다. 주거지 납치사건, 흉기난동 사건, 차량으로 사람을 덮치는 사건, 공원 성폭행 사건에 이은 수십 건의 온라인 살인예고 글 등 일상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이처럼 무고한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면서 국민이 집단 불안감에 빠졌다. 길을 가다 이유도 없이 공격당하는 공포스러운 현실, 집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편안하게 산책했던 동네 산책길도 이제는 불안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전화에도 sns에도 안부를 묻고 불안하고 무서움을 서로 호소하는 상황이 되었다. 운이 나쁘면 언제든지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신림동 사건과 서현역사건 등이 언론과 SNS상에서 관련 내용과 영상들이 계속 보도되면서 다시 장면을 상기하게 되어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끼고 있다. 이처럼 연이은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을 통해 국민들이 받고 있는 정신적 충격은 매우 크다. 무장한 경찰특공대와 장갑차 배치 소식도 적절한 조치로 받아들인다. 평소 같지 않게 시민들의 반응이 오히려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이번 흉기 난동 사건들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지하철역 근처라는 점, 모르는 사람에게 누구나 갑자기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이 두렵게 느껴진다. 여자가 대낮에 길을 걷다 강간 살인을 당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강력범죄 보도가 이어지는 세상에서 얼마나 더 안전하게 스스로 예방할 수 있을까. 바로 생존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아파트 주변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고 학교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조그마한 천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산책로에

가로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지만 나무가 무성해져서 가로등이 다 가려져 밤에는 길이 어둡다. 그간 CCTV가 조금 더 설치되고 가로등이 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번 사건들로 인해 당분간 산책을 못갈 것 같다.



치안정책 방향을 사후조치가 아니라 사전 예방 중심으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CCTV와 비상벨 등 방범시설 설치를 통해 일상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집단불안감과 같은 혼란을 치유하기 위해 취약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보완하고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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