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교육학 박사

김시진 교육학 박사

[동양일보]드디어 끝났다! 아들의 첫 여름방학.‘어린이집 보다 초등학교가 더 힘들고, 학기보다 방학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누구나 직접 겪기 전까진 실상을 잘 모르는 법이다. 한 달이 넘도록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손주 얼굴 보시라는 핑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시댁과 친정에 각각 일주일씩 보냈다. 사실 아이는 혼자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시골 마당에서 벌레도 잡고, 냇가에서 물놀이도 하면 즐거우리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략 보름 후 아들이 집으로 왔을 때는 남편 휴가를 이용해 일주일 정도를 버텼다. 그래도 부족하니 나도 웬만하면 약속을 만들지 않았고, 도저히 어려울 때는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또 회의해?’라고 묻고는 종이와 펜 하나 쥐여주면 옆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소위 현타도 왔다. 친구 집에 보내야 할지,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을지 늘 다음 날을 고민했던 방학이 드디어 끝이 났다. 천년만년 방학이었으면 좋겠다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벌써 더 길다는 겨울 방학을 걱정한다.

‘돌봄 난민’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맞벌이 부모에게 방학은 두려운 존재다. 학기 중에도 정규 수업이 끝나고 아이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문제를 고민했었는데, 방학은 차원이 다르다. 방학 중에도 돌봄교실이 지원된다고는 하지만,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렵고 아직은 저학년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저소득 계층을 우선 지원하는 등 보편적 지원 방식이 아닌 경우가 많아 그 문턱도 높다. 각 학교마다 돌봄교실을 운영하는 방식도 달라서, 학교의 지침에 맞추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조부모나 가족의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경우 대부분의 선택은 늘 그랬듯이 '학원 뺑뺑이'다.

코로나 이후 돌봄의 문제는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문제가 됐다. 학교 안팎에서 발생하는 돌봄과 관리 공백에 관한 지원 마련을 위해 자연스럽게 학교,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에게 그 역할을 물었고, 그때마다 정부는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길러주는 돌봄 지원 정책은 요원하다.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의 전일제 학교, 덴마크의 방과 후 센터와 청소년 센터, 스웨덴의 레저타임센터 등 복지선진국의 방과 후 돌봄 참여율은 60%를 넘는다. 우리의 경우 약 14%에 불과하다. 사회 문화적 인식과 분위기도 작용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부처와 분야를 아우르는 촘촘한 정책이다. 긴급돌봄서비스, 육아휴직 제도 등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도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단순히 교육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유관부처, 어린이집과 유초중고 대학 등 교육 기관, 지자체와 사회적 배려대상 지원 단체, 가정 내 돌봄, 각종 기관 돌봄, 재택근무 등 범국가적인 돌봄 거버넌스가 구축돼 아이를 키우는데 부모가 죄책감을 갖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평생을 여성과 노동, 계급 문제 연구에 헌신한 미국의 조앤 윌리엄스 교수가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란 사실을 전해 듣자 머리를 움켜쥐고 한 말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를 거쳐 엔데믹으로 진입하고 지구적 상황뿐 아니라, 인구 감소·고령화·지역 소멸 문제 등과 맞물려 있기에 돌봄 시스템의 재정립은 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정부가 나서서 우리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2023년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절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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