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은어는 은백색의 빛나는 물고기이다. 가까이는 초록 등과 하얀 배의 매끈한 자태에 힘입어 민물고기의 여왕으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더위 꺾인 가을이면 산란장소를 찾아 하천의 상류로 내달리는 은어 떼가 꼬리를 물고, 햇빛에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 하였던가, 섬진강 은빛 강 물결은 눈감아도 눈부시게 반짝이기만 한다. 

 

물그림자만 어른 거려도 후다닥 도망가는 물고기라 워낙 까탈진 은어의 그 성미가 낚시꾼을 유혹도 한다. 루어낚시(lure fishing)는 지렁이 등 생미끼 대신에 바늘이 여럿 달린 가짜 미끼를 이용하거나 은어를 한 마리 잡아 낚싯바늘을 몸 여러 군데 묶어 놓고 흔들어 놀려 주면 침입자와 영역 방어하느라 맹렬히 달려들어 걸린다고 한다. 

 

센 물살에 낚싯줄로 전달되는 은어의 거친 저항은 놀라운 것이어서 우리나라 은어를 잡으러 원정낚시도 온다. 이 맛을 보러 올 만큼 강한 중독성, 최고의 낚시 맛을 선사 한다니 우아하게 생긴 여왕 물고기의 반전 매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루 수 킬로 강바닥을 걸으면서 즐겨야 하는 취미라 고독한 낚시라고도 한다 들었다.

 

플레코글로수스 알티벨리스는 은어의 라틴어 학명이다.  그런데 물 맑은 일급수에서 이끼를 먹고 살기 때문에 기생충이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은어는 요코가와흡충이라고 하는 유명 기생충의 주된 중간숙주이기 때문이다. 발견자인 일본인 학자의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특히 설사를 유발하는 장흡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를 요코하마흡충으로 오인하여 답하는 학생도 종종 있다.

 

요코가와흡충은 후천적인 면역을 촉발하므로 유행지 사람은 단련되어 커다란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이 기생충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면역능이 없어 응급실을 찾을 정도의 심한 복통과 설사증이 유발될 수 있다. 그리고 감염을 경험하였더라도 재감염을 완전히 방어 하지는 못한다. 면역세포에 비해서 기생충의 몸집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은어회는 얼마나 맛있는 것일까? 

 

늘 궁금해 하던 내게 드디어 맛을 볼 기회가 왔다. 지인의 초청을 받고서 였다. 일본 남부 나고야 인근 기후시에서 며칠 바삐 지내던 중 하루는 그가 점심을 하자며 어디론가 안내하였다. 몇 구비를 돌아 강가에 도착하니 산수가 절경인 어느 시골이 나타났다. 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은어잡이가 한창인데 물길을 좁혀가며 만든 대나무 경사로에 스르륵 얹히는 은어를 그냥 주워 잡는 방식이었다.

 

은어소금구이를 주문한 그는 내 눈을 빤히 보며 물었다. 은어회를 먹어 보겠느냐고? 기생충학자라면 아마도 대부분 먹어보고 싶다 할 것이다. 아는 것이 병인지라 먹어보지 못한 것 일 터이니 말이다. 그는 자신도 함께 먹을 테니 한 마리씩 맛 보자 한다. 이곳 은어는 학생실습 결과 요코가와흡충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은어회를 먹어 보게 되었다.

 

칠팔월 연어는 돌이끼를 먹고 살아서 맛과 향이 남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궁금하였던 것, 여름 은어에서 수박향이 난다는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니 스위트피시로 불리거나, 스위트스멜트로 불리는 것도 모두 인정할 수 있었다. 그만큼 맛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그의 접시를 보고 놀랐는데 머리 빼고 나머지 부분을 남김 없이 아주 말끔히 비워 낸 것이었다.

 

여름철 은어는 돌이끼만 먹어 내장이 거의 비어있다며 쓴맛의 쓸개까지 깨끗이 먹어 치운 그는 그렇게 은어에 관한 탄탄한 내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실습실에서 사고가 났단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 은어 피낭유충을 현미경 검사한 후 은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고 강의용 마이크를 사용한 노래판까지 벌어졌던 것. 그 일로 인해 학장의 관리소홀 경고까지 들었다며 한바탕 웃었다. 

 

은어에 기생충이 있다고 겁만 주면 반 토막 지식, 안전하게 익혀먹는 것 까지 가르치면 한 토막 지식이 되는 것이라 여긴다. 기생충 실습을 한 후 그 고기를 그냥 피하는 학생 보다는 잘 익혀먹을 방법을 터득하는 학생을 나는 더 좋아 한다. 그것이 과학을 공부하는 보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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