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동양일보]“1956년 7월 30일, 어머니는 비가 내리던 선선한 여름날 정오 무렵 미니에폴리스에서 나를 낳았다. 그러고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부고의 작가 해거티(J. R. Hagerty)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이렇게 쓰겠다고 한다. 대게 인생이야기는 출발점에서 시작하기 마련이고 본인의 부고이기에 글의 내용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음으로! 사망소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우울해 할 일도 아니다. 망자가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뤘다거나 2021년에 하직한 웨스트먼(I. Westman)처럼 1905년에 태어나 115세까지 평온한 삶을 즐기다가 장수왕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돌아갔다면 말이다. 그녀의 장수 비결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이었다.

유명인사라고 해도 찬사 일색의 이야기는 본인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지루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본질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어떤가. “대학교를 휴학한 로빈슨과 그의 친구는 로키산맥과 태평양 북서부 연안을 여행할 요량으로 구형 캐딜락 영구차를 구입했다. 그 차의 장점은 뒤쪽에 잠을 잘 수 있을 만큼의 널찍한 공간이 있는 점이었다. 여행이 끝날 무렵 영구차가 더는 필요 없어진 그들은 존경하는 작가인 헨리 밀러에게 그 차를 선물하기로 했다.” 『북회귀선』의 작가 밀러(H. Miller)는 이들의 깜짝 선물을 받았을까. 참고로 밀러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로서 성(性)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문학계에 자유의 물결을 일으켰다. 뮐러는 팬들의 선물을 거절했다.

클리퍼(C. Klepper)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을 때 실명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학교에 입학하여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러시아어, 중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폴란드어를 섭렵하였고 러시아어 점자로 26권 분량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어냈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으며 아들을 입양했고 중국여행도 즐겼다. 앞을 못 보는 클리퍼의 종교관에 귀기울여볼만하다. “『성경』에서는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은 무엇을 창조했을까요? 신은 영혼을 창조했어요. 우리 영혼이 바로 신의 형상이죠.” 또한 그녀는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였으니 잘못 사용하면 나쁜 일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모두 내 탓’이라는 신앙관을 갖고 있었다.

하이브리드는 동물이나 식물, 기계 등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기능이 합쳐진 것을 뜻한다. 중국의 농학자 위안 룽핑은 수확량이 많은 하이브리드 벼 품종을 개발하여 중국을 기근에서 구하는 데 일조한 존경받는 학자였지만 연구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위안 룽핑은 토마토를 고구마에 접붙이는 기발한 시도를 하였고 그 상황을 구술기록으로 남겼다. “땅 위에서는 토마토를, 땅 밑에서는 고구마를 수확하고 싶었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고 기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중국인들을 ‘쌀밥’으로 배불린 91세의 농학자 위안 룽핑은 후배연구원에게 숙제를 남기고 2021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은 1933년 충남아산 설화산 아래 좌부리에서 태어났고 온양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국문과를 졸업한 이어령은 1950년대 정체되어있던 한국문단을 향해 ‘우상의 파괴’를 부르짖으며 ‘문학의 혁명’을 부르짖었던 결기 있는 문학도였다. 그는 고향산천을 절절히 묘사한 에세이집 『흙속에 저 바람 속에』로 토속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오륜기와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굴렁쇠 퍼포먼스’를 기획하여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이어령은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부임하여 문화행정의 기틀을 잡았으며 국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키는 ‘부지깽이와 두레박’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어령은 부인 강인숙 여사와 함께 창작과 저술의 산실인 ‘영인문학관’을 개관하였고 삶을 갈무리하는 『눈물 한 방울』 육필 원고를 남기고 2022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더 나은 방향감각과 목적의식을 갖고자 한다면 아직 기억이 생생할 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 [이 글은 제임스 R.해거티 지음, 정유선 옮김,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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