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소설가

강병철 소설가

[동양일보]그 마당은 천수만 가는 길목 가생이에 있었다. 그리고 밀짚방석 깔아놓은 여름밤이다. 별들이 그물망으로 넘실거리는 늦봄 저물녘이 되면 누나들이 우리 집 마당을 가로질러 오그르르 바다로 나갔다. 내려갈수록 하천의 폭이 넓어지던 끄트머리를 넘어서자마자 서해바다가 펼쳐 있었다. 누이들의 허리가 낭창낭창 싸리회초리처럼 흔들리는 어스름 달밤.

“워디 간댜? 바다 귀경?”

도시 사람들처럼 리아스식 해안의 밤바다 풍경 만나러 가는 줄만 알았다. 밤이슬 맞으며 소금 창고 가는 줄 안 건 훗날의 얘기이다.

“후후후……그랴. 이.”

바닷물을 저수지처럼 가두어 염분을 증발시키고 다음 저수지로 옮겨 또 소금기 진한 바닷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물들을 물레방아에 올라 하염없이 돌려 염전으로 끌어 옮긴다. 여름 땡볕으로 말리고 또증발시킨 그 이후의 고단한 도정을 누나들이 맡는 것이다. 마침내 바닥으로 소금기 버석버석 깔리면 고무래로 긁어 푸대에 담아 창고에 나르는 것이다.

짚누리 뒤에서 오줌을 누다가 마주친 누나들은 종아리 소금꽃 털어내며 언덕길 넘는 중이었다. 마을마다 바다가 옆구리처럼 매달린 줄 알았던 유년이다.

동무들 중에서 개헤엄 실력이 꼴찌였다. 해당화 풀밭에서 개미구멍 찾다가 허리를 펴면 고두리 저만치 시퍼런 물결로 자맥질하던 동무들의 아우성이 귓바퀴로 쟁쟁 울렸다. 가끔 안흥 바다 어디쯤에서 누군가 수평선 이쪽을 바라볼지 모른다면서 소년 혼자 망망 표정으로 마주보곤 했다. 사내들이건 계집애들이건 아무도 놀아주지 않았으므로.

‘영원히 장가를 못들 게 확실하다’

그런 불안감으로 가슴 여미던 강박증도 있었다. 동화책은 재미는 있었지만 머나먼 당신들의 스토리들이었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백설공주나 신데렐라까지 예쁘고 착한 여자들은 모두 이웃나라 왕자님과 결혼했으므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나마 ‘미운 오리 새끼’의 변신이 희망을 주긴 했지만 나에게 그런 행운이 올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여자들은 헌신적인 만큼 삶이 지난했고 마지막 한줌까지 감수하려 했다. 고두리 방앗간 김 사장은 아내가 딸만 다섯 낳은 후 더 이상 아기가 서지 않자 후처를 들여 신작로 만화방 옆에 새집 살림을 차렸다. 또 딸이 태어나자 김 사장은 낮술에 취해 개울에 빠졌는데 후처 배씨는 미역국 건지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조강지처 청양댁은 마늘밭 매다가 호미날에 기댄 채 한숨만 푹푹 쉬었고 열네 살 매숙이 누나도.

‘새엄마가 또 딸을 낳았어.’

씀바귀 풀밭 더듬다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보리피리 만들던 누이의 풀꽃 웃음이 아지랑이 사이로 싸-하게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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