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문학박사·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강찬모 문학박사·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동양일보] 최근(8.8.)에 문민(52) 서울국제학원 원장이 포석조명희문학관을 방문했다. 문민 원장은 만주(흑룡강)에서 태어나 조선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고국인 한국으로 이주(1995년)했다. 이주의 사연을 물어보니 몇 날 며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아야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국에 정착하기까지 말 못 할 곡절이 많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 재외 동포 중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 동포들의 고국 정착이 다른 지역의 재외 동포의 그것과는 ‘차별’이라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유독 적지 않은 게 공공연한 현실인 탓에 그 과정의 지난함을 알 것 같았다. 문민 원장이 문학관을 찾은 이유는 포석과 관련한 매우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문민 원장은 사범학교 재학시절 서예 교사로부터 포석의 소설 ‘낙동강’의 첫머리에 나오는 ‘낙동강에 대한 노래’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출품한 작품이 서예대전에서 입선(199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한국에 오기 전(1994년) 우연히 길림에 갔다 한 호텔 레스토랑에 그때 쓴 작품이 액자로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입선된 작품이기 때문에 애착이 있었으나 본인이 소장하고 있지 않아서 돌려받기를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한국으로 이주했단다. 지금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 마음처럼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학생들과 함께 방문해 포석의 삶과 문학의 발자취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낙동강에 대한 노래’를 재해석한 글씨를 써 다가오는 가을 문학관에 기증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증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크며 포석과 관계된 하나의 주목할 만한 일종의 ‘뿌리 찾기’ 스토리텔링이 될 것으로 본다.

포석의 작품이 조선족교과서에 수록이 된 사실은 오래전의 일이다. 교과서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시민의식의 척도로서 교양과 상식 그리고 역사와 지식의 표준이다. 이러한 교과서를 기본으로 익힌 당대 사회의 학습 환경은 그 자체로 보편성을 갖는다. 예컨대 우리 국민 중 소월과 만해, 동주와 육사를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 이는 모두 교과서의 보편성의 시혜가 주는 인식의 힘 때문이다. 따라서 포석의 작품이 조선족 학생들에게 미친 영향과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 문민 학생은 서예 교사가 권유한 대로 그냥 썼을 뿐 ‘낙동강에 대한 노래’가 누구의 작품인지 그 노래가 어떤 의미로 표현되었는지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써보라고 해 썼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도식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형식적인 글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국으로 이주한 후 중국에서의 추억을 되도록 잊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낙동강에 대한 노래’ 액자도 함께 망각 속으로 사라질 즈음 코로나19가 발병해 외부 출입이 어렵게 되자 장롱 속 깊숙한 곳에 보관했던 붓을 들어 ‘낙동강에 대한 노래’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붓은 그가 한국으로 올 때 가장 소중하게 지니고 왔던 귀중품 1호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냥 쓰라고 해 쓰는 타성적인 글이 아니라 이번에는 그 글의 의미와 노래를 지은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찾아본 결과 그가 조명희였고 ‘낙동강에 대한 노래’가 그의 소설인 ‘낙동강’의 도입부에 노래로 나오는 구절이라는 것을 확인인 후 그가 태어난 곳이 충북 진천이며 그곳에는 시설에 잘 갖추어진 문학관이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 결정한 방문이었다. 이것이 문민 원장이 진천의 포석조명희문학관을 방문한 일련의 숨겨진 비화와 과정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포석과 그의 작품이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국외에서 10년 동안 포석은 한글문학을 통해 고국의 역사와 정서의 씨를 동토의 땅에 뿌렸으며 그의 사후에도 주옥같은 작품은 모두 바람 찬 북방에서 우리 문학과 역사 그리고 정서를 전파하는 중요한 기폭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뿌린 씨앗은 반드시 수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 포석이 뿌린 한국문학의 씨앗은 이렇듯 시공을 초월해 회귀하는 연어처럼 기원을 향한 자맥질을 계속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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