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여성정책 또는 성(젠더)인지 정책이란 말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배워 두고 써 먹으면 지식을 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투정이라 생각한다. 이런 투정은 성인지 정책이 여전히 주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라 본다.

성인지 정책은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들이 남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남녀 간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목표로 수립되거나, 차별을 결과하지 않도록 조정된 정책이다. 이처럼 젠더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전통적인 남녀역할 구분이 약해지는 등 젠더 관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도 많다. 남녀 사이의 갈등도, 여성혐오도 이런 혼란 속에서 빚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회변화를 이해하도록 돕고 사회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도 성평등 문화확산의 중요성은 크다. 광역시도들은 여성재단들을 두고 이런 기능을 담당하게 해 왔지만 연구기능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충북여성재단은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 처음부터 고르게 갖추었다. 최근 충남과 경상도 지역의 여성재단들이 통폐합되면서 주변화되는 와중에도, 충북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전국의 여러 광역시도와 함께 여성재단을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충북은 여성가족정책관실을 양성평등가족정책관실로 바꾸어 성평등이라는 정책목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녀행정이 여성정책, 나아가 성평등정책으로 발전해 오면서 정책대상이 여성에서 도민 전체로 확대되었고, 정책목표가 성평등으로 분명해졌다. 지금 성평등 문화확산 정책과 사업은 한국전쟁 직후 부녀행정 체제 하에서 여성 대상 한글교육과 바느질 교육 등 여성을 계몽하고 취업을 돕던 사업들과는 목표와 성격이 다르다. 여전히 질적으로 양적으로 어려운 여성취업을 위한 사업은 여성새로일하기본부와 같은 전문기관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성평등 문화확산에 집중하는 사업이 강화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고 교양도 취업을 위한 준비도 어려웠기 때문에 여성회관이나 여성발전센터에서는 여성을 계발하고 계몽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교양교육만 아니라 취미교실도 흔히 열렸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성회관에 목욕탕, 예식장, 수영장을 갖추기도 했다. 여성 관련 공공시설 외에 주부교실이나 주부대학 등이 널리 유행할 정도로 여성들이 교육에 갈급하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지역의 사업들은 여성취미교실, 교양교육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남녀의 상급학교 진학률에 차이가 없고, 여성의 사회활동참여에 대한 금기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 성평등 문화확산을 위한 노력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취미나 교양교육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없다. 더욱이 평생교육기관과 프로그램도 확대된 상황이다. 도민의 혈세로 유지되는 성평등 공공기관의 프로그램은 성평등 문화확산이라는 전체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민에서는 재정이나 인력 등 역량 부족으로 할 수 없는 사업들이다. 남성을 위한 성평등 프로그램도 확대되어야 한다. 남성들은 부부싸움 등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성평등을 배우게 되는 등 성평등 지식의 성격차도 줄일 필요가 있다.

성평등정책은 남녀차이뿐 아니라 여성들 간의 차이도 잊어선 안 된다. 여성은 사회계층, 연령, 지역 등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평일 낮에 열리는 프로그램에는 어떤 여성들이 올 수 있는가? 우리가 만든 외국어 투성이의 안내지가 특정 계층 사람들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지 않을까? 프로그램 수요조사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벽지 도민을 위한 성평등 프로그램은 뭘까 머리를 쥐어짜는 고민도 해야 한다. 정책이 성을 인지할 것을 요구하는 뿌리에 그러한 정책이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잘 살피는 태도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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