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동양일보]9월 4일 월요일 이 아침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평소처럼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일과를 준비하고 등굣길 둘러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글렀다. 많은 교사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학교를 비울 것이고 남은 교사들은 아픔을 곱씹으며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단축수업은 불가피하고 평소와 다른 일과 운영으로 모두들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애당초 재량휴업을 결정하고 시행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학사일정만 하루 늦춰질 문제였다.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은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다수의 교사들이 학교를 비울 것이 분명한 데도 휴업을 금지하다보니 단축수업, 특별수업 형태의 학교운영이 불가피해졌다. 결과적으로 학습권 침해는 휴업을 금지한 교육부가 초래한 셈이다.

교육부는 비상재해나 그 밖의 긴급한 일이 있을 때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는 재량 휴업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징계 등 각종 수단으로 위협했다. 그렇다고 교육청이 나서서 휴업을 명하지도 않았다. 태풍이나 초미세먼지 등 기상상황만 나빠져도 학생 안전을 명분으로 휴업을 권고하거나 명령하던 교육부나 교육청이 아니던가.

9월 4일 오늘은 23세 나이로 학교 안에서 유명을 달리한 젊은 교사의 49재일이다. 고인을 추모하고 교육활동 보호를 요구하는, 수많은 교사 단체 등의 각종 행동이 예고되어 있다. ‘공교육 멈춤의 날’ 또는 ‘공교육 회복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이 움직일 것이다. 더러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더러는 오후부터 밤까지.

어쩌다 이렇게 교사들이 거리로, 국회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가. 고인의 죽음 이후로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도, 법률 정비도 이뤄지지 않았다. 수많은 교사들이 주말마다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외치는 데도 그렇다. 이런 와중에 2명의 교사가 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삶의 마지막 날까지 학교폭력 등 학생의 문제행동과 학부모의 민원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고인의 죽음과,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통과 무관한 교사는 전국에 없다. 그러니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함께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 관련법으로 인해 업무폭탄과 악성민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문제 행동을 일삼는 학생을 지도할 적절한 수단과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담임교사 홀로 짐질 수밖에 없는 것. 마치 자기 아이만 가르치고 뒷바라지 하는 것처럼 수많은 일을 요구하는 학부모와 상대하는 것. 이 모든 일이 모두의 일이다.

교사 없는 교육을 생각할 수 없고 교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교육이 제대로 설 수 있다. 그러기에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교육청은 평소처럼 할 일 다 마치고 애도하라 한다. 교육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일조차 퇴근하고 요청하라 한다.

이틀 전 여의도 국회 앞에는 교사 30만이 모였다. 이렇게 많은 교사가 모인 것은 대한민국 역사 이래 처음이다.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죽음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 개정, 각종 민원과 문제 행동학생 대응책 마련과 책임 명시, 현장교사가 참여하는 교육정책 소통을 요구했다.

집회 연단에는 ‘두려움을 나아갈 용기로, 연대를 공교육의 희망으로’라는 글귀가 걸렸다. 지금 교사들은 글귀처럼 두려움에 침몰하기보다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 용기를, 홀로 쓰러지기보다는 함께 희망을 붙잡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회가, 교육부가 교사들의 죽음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다면 9월 4일은 아마도 조용한 추모와 일상적 교육활동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서이초 교사 49재일에 맞춘 교사들의 집단행동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책임이 막중한 교육부는 오로지 위협만을 일삼고 있다. 공언대로라면 파면·해임 징계와 형사고발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교 현장은 더 많은 고통과 갈등,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교육부 등이 그토록 외치던 교권보호, 학습권 보호의 모습일 것인가.

교사들의 행동과 목소리가 그저 쉬 짓밟히거나 파쇄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당국이 서둘러 해야 할 일은 선생님들의 슬픔, 분노, 열망의 에너지를 교육 개혁과 발전의 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현장 교사로부터 비롯된 이 거대한 물결을 슬기롭게 받아 안길 바란다. 징계나 고발은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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