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거대자연이 스승이며, 천하만인이 선생이다”우리는 자연을 활용해 살아간 선조들의 삶의 자취, 즉 그 문화유적이 자연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쌍곡구곡 떡바위 북두칠성성혈(性穴)과 “독(항아리, 복주머니=농협휘장)모양”의 암각화가 그 한 예이다. 여기에는 청동기인의 다양한 의식이 함축내포돼있다. 먼저 성혈은 글자 그대로 여인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첫째,“성혈”은 고고학계, 암각화학계에서 청동기인이 여성의 성기(性器)를 중시숭상하는 의식을 반영하여 파놓은 것으로 본다. 청동기인들도 자녀를 많이 낳고 물자가 풍부하기를 열망했다. 남녀가 성교할 때, 남자의 성기를 여성의 성기에 들락날락 넣다뺐다하듯이, 다른 도구를 성혈구멍 속에 넣고 돌리며 문질렀다. 그래서 성혈이 점점 커지고 깊어졌다. 따라서 성혈은 여성의 성기와 같은 구멍이다. 이렇듯 남녀의 성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통해, 자녀도 많이 낳고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즉 성혈은 다출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모방주술(呪術)신앙의식을 행한 현장이다.

둘째, 왜 쌍곡계곡 물가 가까운 곳에 있는 암반 윗면에 새겼을까? 떡바위 경사면 중앙으로 깊이 약 10cm 길이 5m의 V자모양 골이 개울쪽으로 이어진다. 그 모양이 좌우음순이 맞붙어 있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 생명의 근원인 계곡의 물을, 여성의 성기에서 나오는 분비물과 동일하게 보고, 그것을 연계하여 계곡가 암반위에 북두칠성 성혈을 파놓은 것이리라.북두칠성은 “국자”모양이다. 생명수인 은하수의 물을 국자로 퍼담아 인간세상으로 내려보낸다고 믿었다. 다음은 암각화를 전공한 이하우선생의 견해를 요약했다.“땅에서 벼등 곡식이 생겨나 자라는 것이, 어머니가 생식기를 통해 애기를 낳는 것과 동일한 현상으로 보아, 땅의 신 즉 지모신(地母神)을 숭배하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이렇듯 마을의 특정장소에 성혈을 파놓은 이유는, 그곳이 성스러운 행사를 하는 신성한 장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쌍곡 떡바위 암반은 그 위치, 규모, 형태로 보아 다산아풍요기원의식(多産兒豊饒祈願儀式)을 거행한 신성한 제단(祭壇)이라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성혈이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오는날 남녀가 성교하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용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방아공이 건다, 방아확이 크겠는데”,“가죽방아 찧는다,떡방아 찧는다”, “떡친다, 떡판 좋다, 떡깨나 치겠는데”,“절구질한다”등이다. 이렇듯 청동기인들이 성혈을 파놓고 거기에 의탁한 그들의 사유세계가 지금까지 전승됐다. 최초로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도구(搗臼)는 성혈이다. 이를 응용 확대하여 개인용 이동용으로 “절구”, 고정용 다인용(多人用)으로 “방아”를 창의했다. 절구질하고 방아찧는 모습이,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녀가 성교하는 행위를 방아와 절구에 비유한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넷째, 쌍곡 절말에서 제수리재로 넘어가는 길, 오른쪽 개울가 턱 위에 평지가 있다. 여기에 있는 평평하고 넓은 암반에 방아확을 파놓았다. 그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주민들이 파놓았다. ‘떡바위’성혈의 방아찧는 기능을 창의해온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좀 위편 자동차길 오른편 개울쪽에 조선말일제시대 백자를 굽던 도요지가 잘 보존돼왔었다. 밥사발, 국그릇, 대접, 잔, 접시등을 구웠다. 2002년경 답사하다 보았다.

다섯째, 9월1일 토요일 지리암석학을 전공한 정일근선생이 관찰 후 말했다.“칠성면 소재지 도정리에 있는 고인돌들은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며, 현재로는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두칠성을 파놓은 쌍곡구곡 떡바위는, 그 자리에 있는 자연석이며 위치와 규모로 볼 때 제단으로 보인다.” 선돌에 새겨놓은 독모양의 암각화를 확인시켜주기 위해, 새긴 선이 드러나도록 연한 풀잎으로 문지르는데, 떡바위 옆에 사는 이종철주민이 나와 참관했다. 어머니 때부터 칠성신앙을 믿었으며,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관심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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