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정부는 지난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하고 이를 9월 1일 국회에 제출했다. 작년 12월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편성된 예산안은 이제 국회에서 소관상위 예비심사, 예결특위 종합심사, 본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되며, 정부는 국회에서 확정 회부된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정부는 또한 회계연도 종료 후 감사원 검사를 거친 결산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국회는 예비심사, 종합심사, 본회의 의결 등 결산심의 과정에서 예산집행을 심사하고 회계연도 다음 해 8월 말쯤 예결산 절차가 마무리된다. 한 해 예산의 계획, 편성, 심의, 집행, 결산에 꼬박 2년 8개월이 걸리는 것이다.

‘알뜰 재정, 살뜰 민생’을 기치로 내건 2024 예산안은 총세출 규모를 전년 대비 2.8% 증가한 656.9조원으로, 총세입을 2.2% 감소한 612.1조원으로 편성하여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는 1.9%(44.8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았다.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세출증가율로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하여 국가채무 증가 폭을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61.8조원으로 축소하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중기(5년) 재정건전성도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2025년부터는 관리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국가채무는 2027년 말까지 50%대 중반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하였다.

2024 예산안이 추구하는 건전재정의 기조는 옳은 방향이며, 코로나 위기를 거친 대부분 선진국의 공통적인 재정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으로 국회에서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정부가 제출한 2024 예산안의 기본 골격이 지켜질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선은 2.8% 증가에 그친 세출예산에 대한 야당의 확대재정 요구가 빗발칠 것이며, 여당 역시 예산확대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지난 정부 5년 동안 총세출은 9% 안팎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새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2023 예산안은 총세출 5.1% 증가로 전년 대비 하향조정하였고 2024 예산안에서는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2.8%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번 예산의 회계연도인 2024년에는 4월 10일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여야간 대화와 타협문화가 메마른 현실에서 거대 야당과의 예산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며, 이에 더해 건전재정 기조에 악재로 작용하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 2024 예산안은 미리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예산 민원은 이미 편성단계에서부터 시작되어 확정단계까지 지속될 것이다. 마음이 온통 내년 총선에 가 있는 정치권은 저마다 표밭갈이용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려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은 삭감, 조정, 증액 등의 과정을 거칠 수 있으나 어떤 경우이든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선거용 민원으로 국민의 혈세인 세출이 늘어난다면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예산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2024 예산안은 ‘알뜰 재정’을 추구하면서도 ‘살뜰 민생’을 챙기다 보니 예산 항목 중 특정 부분을 삭감하는 모험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간 R&D 투자 급증에도 불구, 가시적 성과 도출에는 미흡했다’는 이유로 R&D 분야 지출을 무려 16.6%나 삭감한 것이다.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비효율성과 관행적 행태는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그러나 R&D 분야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아 그 토양 자체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R&D 예산 삭감은 이번 한 번만의 충격요법에 그쳐야 한다. 우리는 지난 정권 5년간의 탈원전정책이 원자력 연구개발과 원전산업을 얼마나 초토화했는지 똑똑히 확인하고 있다. 빈대를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2024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왔다. 참으로 바쁘신 일정이시겠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나라살림이니만큼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나랏돈이 새는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 국민을 위한 국민의 예산을 확정해주기 바란다. 정부도 건전재정의 기조 유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꼭 필요한 재정의 확대에는 길을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총선용 예산 민원이나 다른 이유로 예산을 왜곡하여 국민경제 전체의 윤곽을 흔드는 일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국민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누가 예산안을 내 살림처럼 꼼꼼히 살피는지, 누가 나라 살림이라고 허투로 다루는지를.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