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1.4후퇴로 피란길에 오른 지 2달 만에 음성군 정김말에 도착했다. 금왕읍(金旺邑), 일명 무극(無極)에서 동쪽으로 다리 하나 건너면 정김말이 나온다. 그때(1951년)에는 생극면이었다. 지금은 금왕읍이다. 원명은 정짓말인데 그때는 정김말로 통했다.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이 마을을 지킨다. 우리가 이 정김말에 1951엔 2월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머리를 두고 온 창연네는 피란을 가고 빈 집이었다. 우리는 죽산을 거쳐 삼성쪽으로 왔으나 창연네는 진천을 거쳐 이월, 광혜원 쪽으로 피란을 가서 우리와 길이 엇갈렸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그 빈집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0호는 그날 저녁부터 정김말 옆 마을인 바드실로 바가지를 들고 가는 거였다. 걔네 식구들의 저녁밥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튿날 0호 엄마가 막내를 등에 업고 우리엄마에게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줌마는 꼭 우리 친정엄마 같어요. 애들두 친할머니처럼 따르구. 한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보은 도착하는 대로 연락드릴 게요. 그간 안녕히 계세요.” 그날 0호도 떠나면서 저보다 큰 이불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바로 아래동생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 “우리 난리 끝나믄 서울에서 만나자. 잘 있어.”하고 외면을 하고 눈물을 닦았다. 나도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걸 잊지 못한다. 그걸로 그 가족과는 끝이었다. 그 후 소식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 이튿날 그러니까 0호네가 떠난 다음날 구씨네와 이별을 했다. “아줌마 인자허시고 큰언니 다리 불인하신데도 탈 없이 따라와 주셔 고맙습네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컸습네다. 니들두 잘 있어.” 그리고 그의 부인은, “꼭 친정 형님 같았는데 막상 흩어질라니꺼 눈물이 나네예. 안녕히 기시소, 동상섞건 총각들두 잘 있거래.” 구씨는 서운해 하면서도 리어카를 어루만졌다. 그 구씨는 이야기꾼이었다. 우리가 조르면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벙거지를 쓰면 몸이 보이지 않는데 그 벙거지를 아들이 윗부분을 실수로 펑크를 내고부터는 그 벙거지를 쓰면 그 펑크 난 데로 머리카락이 넘실넘실거리는 게 보여 마치 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구씨가 꾸며낸 이야기지만 하도 그게 재미있어서 또 그다음을 이야기 해달라고 졸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별을 하게 된 것이어서 그게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구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후 사흘이 지나 집주인이 왔다. 즉 창연네가 온 것이다. 소가 끄는 달구지에 피란 짐을 잔뜩 실었는데 그 달구지를 끄는 소가 바로 큰언니가 사준 소라는 거다. 창연인 이집의 3살 먹은 아기고 그 애의 엄마는 죽은 큰언니의 누이인 나에게는 고종사촌누이의 딸이다. 그리고 그 딸의 남편 성동이고, 그 성동의 누이동생 곧 창연이엄마의 시누이다. 그리고 일행 중엔 나와는 낯익은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곧 완광이조카였다. 이 완광이조카는 죽은 고종사촌누이의 셋째아들로서 큰형인 완홍이가 서울의 종로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고 둘째인 완주와 어머니가 계신 창연네집 즉 누이집으로 왔다. 그래서 내가 완광이조카에게 물었다. “아니둘째조카인 완주조카하고 같이 여기로 왔잖아 안 보이네 어디 갔어?” “응, 그 형은 곧 충주에 있는 큰댁으로 갔어. 그 큰집에 아들이 없잖어 그래 양자 로 들어간 거야.” 이래서 창연이와 창연이엄마, 창연이엄마의 남편, 창연이엄마의 시누이. 그리고 연광이조카 이렇게 다섯식구다. 이 다섯이 소달구지를 끌고 피란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반가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간채에서 기거했다. 방이 하나였다. 그래서 엄마와 네 살 차이(엄마가 4살 아래)인 큰언니는 이웃에 사는 쇵현(송현)아저씨네로 가서 잤다. 이 송현 아저씨는 그의 아내가 송현동에서 시집와서 붙여진 택호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시집와서 보니까 남편이 성 불구였다. 그래서 몇 날을 생각하다가 ‘이것도 내 팔자다, 나 없으면 생전을 홀아비로 지내야 하지 않는가.’ 하고는 눌러 있으면서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는 중인데, 큰언니가 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와 결혼에 실패한 후부터 알고 가까이 지내오는 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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