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

[동양일보]서울 신림역과 경기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과 서울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이후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된 가운데 유동인구가 많은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등 대중교통과 공공장소에서 ‘흉기난동’으로 오인해 대피하는 소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4일에는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 안에서 한 외국인 승객이 쓰러지자 승객들이 칼부림으로 오인해 대피했다. 이틀 뒤에는 1호선 열차 안에 흉기를 소지한 승객이 있다는 오인 신고가 있었다. 또 9월 5일과 6일에는 열차 안에서 나온 비명을 듣고 ‘흉기난동’사건이 벌어진 줄 오인한 다른 승객들이 한꺼번에 출입문으로 몰리면서 대피하는 과정에서 여러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최근 ‘오인 대피 소동’이 잇따르는 배경에는 최근 발생한 ‘신림동과 서현역 흉기 난동,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강력범죄와 그로부터 파생된 칼부림 예고 글이 거론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7월 24일부터 9월 3일까지 살인예고 글 게시자 총 246명을 검거하고 이 중 24명을 구속했다.



왜 시민들의 오인 대피 소동이 벌어지는 걸까?



최근 사건들의 공통점은 평소 유동인구가 많고 안전하다고 느낀 장소 또는 CCTV 등이 설치되어 있어 안심하고 다니던 길에서 끔찍한 강력범죄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즉 도심 한복판과 지하철역, 쇼핑몰, 도심 내 위치한 등산로 등 평소 안심하고 다녔던 장소에서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충격에 빠지게 되었고 이는 일상적 장소가 범죄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공포의 확산과 전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주관 부처인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종신형 제도, 정신질환자의 사법입원제 도입, 그리고 경찰의 물리력 강력행사 등의 대책이다.



특히 경찰의 대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찰은 범죄예방의 최일선에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경찰에서는 저위험권총을 보급하고, 신형 방검복을 제작해 보급할 예정이다. 또한 도보순찰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물론 경찰에서 내놓은 일련의 대책들은 범죄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방검복은 일선 현장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며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과거 경찰이 사용한 고무탄 총 역시 인명피해에 따른 과잉진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물리력 사용을 가로막는 면책 규정 등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묻지마 범죄에 대해 치안 역량 강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과 정부의 지시에 따라 경찰은 조만간 치안 중심의 인력 재배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본청과 시도청 지원인력을 중심으로 전체 인원의 5% 내외를 지구대와 파출소 등 지역 경찰로 재배치하는 내용이 검토되고 있다. 이미 서울 강동 경찰서는 지난 8월 28일 정·현원 대비 과원 인력 11명에 대해 지역관서 인사발령을 시행했다.



즉 이번 경찰 인력 재배치의 핵심은 사실상 지구대·파출소를 통폐합하고 관리 업무를 맡는 인력을 최소화시켜 순찰 인력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또한 위와 같은 방식으로 확보한 순찰 인력은 도보순찰에 투입하여 인파 밀집 시간대와 장소 등을 고려해 ‘집중 순찰 시간대’를 선정하고 가용 인원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 취약 장소를 1일 1회 2~3시간을 도보 순찰해 가시적 순찰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 차량순찰 중심으로 이뤄졌단 ‘거점순찰’또한 도보순찰 위주로 전환된다. 다만 우려되는 대목은 치안 공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빠른 출동과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데 도보순찰을 하는 중에 긴급하게 일이 생기면 현장에 빠르게 가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일련의 대책들은 언뜻 보면 경찰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았을 때는 경찰이 열심히 범죄에방을 하고 있다는 ‘보여주기식’의 대책에 그친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보여진 묻지마범죄는 범행의 시간과 장소만 바꾸었을 뿐 결국 경찰의 순찰과 관계없이 범행이 이루어졌다.



즉 순찰이 묻지마 범죄의 유일한 대응책이 될 수는 없고 또한 도보 순찰로 광범위한 지역을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지구대·파출소는 통폐합하면서 부족한 인력으로 도보 순찰을 하는 것은 현장을 알지 못하는 지휘부의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조사에서 서울시 내 31개 경찰서 본서 근무 인력은 모두 정원을 초과한 반면, 일선 치안을 담당하는 지구대·파출소의 절반가량은 정원 미달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예방 최일선에 있어야 할 현장 경찰은 부족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땜질식 처방과 더불어 업무는 가중되고, 현장 실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모순된 구조는 현장 경찰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



범죄예방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현장 경찰관이 참여하여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는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수렴한다면, 이를 통해서 보다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범죄예방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최근 묻지마범죄자의 특징은 고립·운둔 생활 속에 비교와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이기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런 외톨이형 범죄는 사회적 유대를 통해 건강한 관계 속에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극단적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경찰의 치안 대책이나 사법기관의 사후 처벌도 중요하지만, 범정부적 차원에서 고립 청년들의 회복 지원 등 사회적 대책 마련을 포함한 범행의 근본적인 동기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