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영 수필가

민미영 수필가

[동양일보]누군가에게 말을 쏟아놓고 나면 편안해지는 때도 있다. 다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그래, 힘들었겠다. 지금은 괜찮아?’라며 자기의 생각이나 충고를 표현하지 않고 막연히 들어줄 때 그런 기분이 든다.

듣는 중에 참견하고 지적을 하고 간섭을 하는 느낌이 들면 뭔가 정리가 안 된다. 결국 말하면서 스스로 해결하는 게 말하는 사람의 힘이다. 우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방향을 제시해준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내가 오래 살아봐서 아는데, 경험이 있어서 아는데 라고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에 잘난 아들을 둬서 잘난 척하던 오여사. 스스로는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고 자화자찬이지만, 남들 눈에는 독선이고 자만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게 잘난 아들이 대기업을 그만두고 집안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걸 용서하지 못한다. 왜 그러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나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아들을 닦달한다. 대체 왜 맨날 게임만 하냐고. 그럴수록 아들은 동굴에 들어가듯 더 깊이 파묻힌다.

그 속상함을 누군가에게 어렵게 털어놓았을 때 상대가 아무 말 없이 들어줬을 때 그녀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때 상대방이 말한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아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생각해보니 그녀는 아들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 얘기만 정신없이 쏟아놓았을 뿐….

나 또한 내 경험, 내 판단으로 해결해주려고 말한 적이 많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심리상담을 전공하면서 경청의 중요성만큼 충고나 판단 비판은 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기에 잘 실천하는 줄 착각했다. 전혀 그러하지 못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아차렸다

최고의 동행이란 대화가 필요한 순간과 침묵이 필요한 순간을 알고 말하는 만큼 듣는 법도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진심으로 관심을 두고 바라보면 상대가 타인의 위로가 필요할 때인지, 아니면 조용히 침묵하며 스스로 견디어 내고 싶은지를 알 수 있다. 병원에서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경우,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해 스스로 힘든 시간을 버티는 분이 있다. 그런 분에게 어쭙잖게 다가가 위로를 한들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려줄 뿐이다.

정여민의 ‘마음 온도는 몇 도일까요?’란 시에서는 ‘마음속 온도는 너무 뜨거워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너무 차가워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따뜻함이다. 보이지 않아도 말없이 전해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눈다.’라고 쓰고 있다. 따뜻함으로 상대를 기다리며 침묵할 수 있고, 경청할 수 있는 지혜가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내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