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시절이 참담하다. 남은 더위 속에서도 선선함이 느껴지고 태풍을 견딘 사과가 선명한 색깔을 얻어가는 결실은 완연하지만, 학교에서 자신의 목숨을 놓아버리는 선생님들 소식은 쉽게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분들의 절망과 좌절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지난 9월 2일 토요일 오후, 미안함과 추모의 마음을 함께 담아 서울 여의도 광장 교사 집회에 다녀왔다. 30만 명의 교사들이 모여 제발 이제는 더 이상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마음껏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달라고 절규했다. 깃발을 함께 들며 외쳤고 결국 그 함성은 그 다음 월요일인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교육부를 돌려세우는 마파람이 되었다.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계는 여전히 뭔가 하는 시늉만 하고 있지만, 그렇게 오래 버틸 수는 없을 만큼 상황은 급박하고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다. 사춘기가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내려오면서 6학년 담임이 정말 고되고 혹독한 역할이 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부터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이유로 교사를 고발하는 악성 학부모 민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학생들을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정하거나 개정한 교육 관련 법과 조례가 지닌 허점을 파고드는 비양심적인 변호사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교실에서 싸운 아이들이 교사의 화해를 받아들이기로 해놓고는 집에 다녀온 다음에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입을 닫는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들려와도 애써 흘려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교사들은 그 험한 상황에 홀로 방치되고 있었다. 어떤 일은 자존심이 상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혹시 교감이나 교장에게 이야기해도 조용히 알아서 처리하라는 무책임한 질책을 듣거나 무능한 교사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지역교육청이나 시·도 교육청, 교육부 또한 그리 다를 것이 없었고, 결국은 혼자서 감당하다가 병가를 내거나 휴직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 자신이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 답을 찾아 제시하기 전에 먼저 깊은 미안함과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가까이서 선생님들을 만나오면서도, 또 가끔씩 그 깊은 고통을 우울감이나 좌절감으로 전하는 교사들 눈빛을 대하면서도. 잘 들어주는 것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거나 못한 자신의 무신경과 무책임에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학교에서 교육 영역이 현저히 축소되거나 왜곡되면서 교사가 설 자리를 위태롭게 만든 데 있다.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조금만 제재해도 ‘아동학대’라는 이름으로 고발을 당할 수 있고, 힘이 센 아이들이나 특수아동에게 맞아도 도망가거나 참고 견디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을 가질 수 없는 교사들에게 교육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비현실적이거나 염치없는 짓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설 자리를 다시 마련해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으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정치는 사회의 아픈 곳을 살펴 해결해주는 일을 주된 과제로 삼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곳은 학교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인 공생구조 속에서는 이 학교에서 신음하는 교사들의 아우성이 제대로 들려올 리 없다. 그래서 교사들은 추모 집회 장소를 국회 앞으로 정했고, 전국 교사의 절반 가까이가 모여 외쳤다.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담아 그날 외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는 법안을 즉각 개정하거나 제정해야 한다.

그렇게 바뀐 법들을 토대로 교사들의 전문적이고 도덕적인 권위를 되살리는 일 또한 우리 모두의 몫이다. 민주화와 산업화에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성과를 거둔 우리의 20세기가 저물고, 이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그 과제를 잘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교사가 다시 도덕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미래의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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