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교육개발원에서 발간한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는 2003년 7,240명에서 2022년 17,760명으로 약 2.5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계열별로 살펴보면 공학계열이 2003년 1,758명에서 4,688명으로 자연계열이 1,425명에서 2,890명으로 증가하였고 인문사회계열이 1,627명에서 4,949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예체능계열에서는 2003년 220명에서 2022년 1,666명으로 8배가량 증가하였다. 당국에서는 이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으로 인한 대학교수 수요의 증가와 인적자원개발, 기술혁신 등을 위한 연구개발 인력 등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 증가를 꼽고 있다. 동시에 90년대에 들어 박사학위 소지자 등 고급 인력의 공급 과잉 현상이 부각되고 있으므로 이들 고급 인적자원 활용에 대한 체계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해당 지표에 대한 교육개발원의 해석이다.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장을 설명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이 교육열이다.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폐허 속에서 자식만큼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지위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욕망과 함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전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도 이와 같은 교육열에 크게 기여하였다. 과거에는 대학을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만 전념한다는 의미로 ‘상아탑’이라고 일컬었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신분 상승이 오직 대학에 달려 있다는 일념으로 갖고 있는 논과 밭을 처분하고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제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져서 대학을 위해 우골탑을 쌓지는 않지만 여전히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욕망은 전혀 꺾이지 않아 대학에 인골탑(人骨塔)을 쌓고 있다. 우리네 부모 세대에서 배움이 모자라서 맺힌 한(恨)을 자식들의 고등교육을 통해 풀었다는 생각도 잠시 뿐이고 빠르게 변하는 기술 수준의 변화와 함께 요구되는 지적 수준의 향상에 대응하면서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기에 교육열은 좀체 식을 줄 모른다. 또한 고등교육 이수를 통해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지금의 40대와 50대의 경험이 오히려 자식들에 대한 더 높은 교육 수준을 요구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교육이 국가 성장의 근간이 됨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을 통한 근대화에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은 1872년 교육제도 명령 도입과 1890년 교육에 관한 칙령 도입으로 근대적인 교육 시스템을 확립한 것이다. 그 결과 약 2만여 개의 소학교를 설치하고 1877년에 도쿄 대학을 필두로 한 국립대를 설립하여 빠른 속도로 근대적 학문을 일본에 이식할 수 있었다. 물론 메이지 유신에 따른 일본의 교육 개혁이 일왕과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 강요를 포함하고 있어 이것이 향후 일본 군국주의의 바탕이 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경제력과 산업 수준을 가지는 일본을 만드는데 있어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지금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정부에 걸친 교육에 대한 의지와 국민들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명제는 지금껏 변함이 없었고 비록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폐해가 있지만 교육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성과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혹자는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의 증가가 전반적인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결과로서 향후 미취업 고학력자의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공계 분야 박사학위 취득자의 경우 점차 높은 기술적 수준을 요구하는 산업계 및 연구계의 수요가 이들을 흡수한다고 하지만 급증한 인문사회 및 예체능 계열의 박사학위 취득자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큰 것도 사실이다. 아마 최근에 논란이 되는 학령인구 대비 대학의 과잉으로 인한 대학의 위기와도 연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하여 인구 대비 박사학위 취득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 경제적인 변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문학적인 성찰과 상상력 확대에 대한 빠른 대응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제도를 통해 무분별한 학위 남발은 지양하면서 미래 수요에 따른 박사인력 양성 계획을 제대로 수립한다면 지금의 박사 인력 공급이 마냥 과잉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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