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교육학 박사

김시진 교육학 박사

[동양일보]최근, 절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길거리를 뒤덮은 현수막, 매주 촛불을 드는 시민들, 자신을 희생해 온몸으로 투쟁에 나선 야당 대표와 정치권의 행태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다고 거리로 나와 함께 행동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기에 허탈감은 깊어진다.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각박해졌나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18일, 아이들을 사랑했던 젊은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거리로 나왔다. 한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선생님들은 일렬로 줄을 맞춰 절규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교육자이자 노동자로서 수업과 학생 지도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여건과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지만, 서이초 교사의 49재가 지난 오늘까지 사망원인조차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정부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49재에 맞춰‘공교육 멈춤의 날’집회를 여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은 두 번 상처를 입었다. 현행법상 교사들은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교사도 엄연히 노동자인데, 헌법과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원천금지 당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자발적으로 연가, 병가 또는 재량휴업일 지정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단체행동에 나섰음에도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은 불법, 파면, 해임, 단체행동과 같은 자극적인 언어와 법적 근거도 없는 징계 협박으로 집회를 무력화하려 했다.

이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전에, 누구보다 학교 현장을 지키고 싶었을 선생님들이 수업을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거리로 나오는 심정을 헤아리면 어땠을까. 동료 교사의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과 비통함, 교육 현장의 변화가 없으면 나 또한 또 다른 희생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 공교육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모인 30만 교사를 위로할 수는 없었을까.

야당 대표가 장장 15일 동안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말하기는 물론 거동도 어렵고, 모르긴 몰라도 정신도 멀쩡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행위임에는 분명하지만, 목숨을 걸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일은 한 개인에게는 고통이다. 이재명 당 대표가 단식을 시작했을 때 이어졌던 조롱과 근거 없는 비난, 일부 정치인들의 도를 넘은 발언이나 행동은 대한민국 사회의 천박한 민낯을 드러냈다. 오늘 우리 정치에는 대화와 협치, 상생이 아니라 혐오와 경쟁, 갈등만이 남아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이들은 세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한 교사의 죽음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학교 현장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교실 밖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사회의 문제를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연일 보게 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지도자상을 체득하게 된다.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느끼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슬픔을 함께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피켓 시위를 하는 농성장에 아들을 데려왔다. 피켓을 들고 선 내 옆에서 아들은 왜 이렇게 하는지를 물었다. 대통령이 잘못해서 싸우고 있다고 답했다. 왜 꼭 소리치며 싸워야 하는 거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그러게’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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