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숭어는 옛 부터 제사상에 올라가는 특별한 생선이었다. 숭상 받을 ‘숭’ 자를 이름에 사용한 것 만으로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물학 사전이라 할 수 있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숭어는 맛이 달고 깊어 생선 중 최고라 적혀 있다. 아마도 산란기를 앞두어 기름이 가득할 때의 맛을 염두에 둔 설명이 아닐까 한다. 



숭어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볼수 있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숭어는  장흡충 피낭유충을 물고기 근육 내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때문에 필자는 스스로의 원칙으로 양식 숭어는 먹고, 자연산 숭어는 먹지 않는다. 



장흡충은 2밀리미터 내외로 작은 편이어서 소장의 융모 사이에서 살 수 있다. 감염되면 주로 설사를 유발하게 되는데 이때 융모 위축과 점막상피의 탈락 같은 병변을 동반한다. 감염 충체 수가 많지 않을 때에는 증상이 미비할 수 있으나, 수가 많을 때에는 복통을 일으키며 호산구증다증이 관찰된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장흡충류가 잘 연구되어 있는데. 숭어에서는 유해이형흡충, 표주박이형흡충, 수세미이형흡충, 자루이형흡충, 갈매기이형흡충 등의 기생충이 발견된다. 이들 이형흡충속 기생충은 소화기장애를 일으키는 특징이 있고, 2밀리미터 내외의 작은 크기라는 공통적 특징도 있다. 



이 연구는 특히 기생충학자 채종일 교수의 일생에 걸친 노력으로 많이 이루어 졌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숭어 뿐 아니라 수많은 민물고기와 반염수어에서 서로 다른 기생충 들을 밝힌 공로가 있는 것이다.  



해남과 진도사이 좁은 해협인 울돌목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물이 운다’하여 울 ‘명’ 돌다리 ‘량’자를 써서 명량해협이라 부른다. 이곳 울돌목에서만 볼 수 있는 뜰채 숭어잡이는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5-6월 사이에만 볼 수 있는 진기한 볼거리이다. 갯바위에 서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가 거뭇한 물고기를 보고 뜰채를 움직여 순간적인 손놀림으로 숭어를 잡는 것이다. 



1597년 정유년 당시 이순신 장군도 울돌목 물살을 관찰하면서 숭어 떼를 보았을까? 그는 울돌목의 물살 방향이 때에 따라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명량대첩을 거두었다. 그런데 숭어는 왜 울돌목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산란 때문. 숭어는 먼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봄이 되면 알을 낳으러 서해로 북상한다. 



이때 숭어는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을 지나야 하는 데, 연어처럼 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백여 년 전 그날의 숭어 떼도 이순신 장군의 대첩과 같이 하였으리라. 단 13척으로 열 배 넘는 왜선을 격파한 기적이 경이롭기만 하다. 



숭어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온열대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특히 플로리다의 산란기 숭어 떼는 해안가에 바짝 붙어서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물고기 숫자가 너무 많아서 마치 기름 유출 띠로 보일 정도이다. 말 그대로 물반 고기반인데 이 장면을 한번 보기만 하여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숭어 떼와 같이 해수욕을 하는 것 또한 관광 명물이 되어 있다.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는 모호크족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볼 수 있는데 앞머리와 양옆은 짧게, 윗머리와 뒷머리는 길게 늘어뜨린 모양을 기억할 것이다. 이 머리 모양을 특별히 숭어(mullet) 머리 스타일이라 하는데 이 헤어스타일은 1970년대 데이빗 보위가 했고, 1980년대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서 멀릿컷이 아주 흔히 보였다. 맥가이버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흥미 있는 점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숭어에서 나오는 기생충의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후 2015년 우리나라 지드래곤도 멀릿컷을 하여 눈길을 끌었고, 코로나 팬데믹 봉쇄조치 때 또다시 엄청나게 유행함으로써 2020년을 숭어머리의 해라고 선포할 정도가 되었으니 숭어는 이래저래 특별한 물고기라 생각된다. 



기생충과 관련된 숭어의 라틴어 학명은 무길 세팔루스이다. 양식 숭어는 문제없지만 자연산 숭어는 장흡충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감염이 의심되면 가까운 ‘메디첵’을 방문하여 프라지콴텔을 처방 받음으로써 치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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