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문학 세미나 장이다. 발제자의 음성이 낭랑하다. 청아한 소리에 자신감까지 배어 있었다. 문우들은 발표 내용에 빠져드는 듯한데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빨려들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앨버트 메라이언 연구에 의하면 첫인상의 38%를 목소리가 결정한다고 한다. 좋은 목소리에서 사람의 매력이 발산되는 모양이다. 처음 만난 사람의 목소리가 맑으면 마음이 투명할 것 같고, 탁하면 성격마저 답답하게 느끼게 된다. 목소리에서 사람의 성정이 묻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람의 발성기관이 저마다 모양이 다를 테니 목소리가 다양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깽깽이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있는가 하면 지하 동굴에서 나오는 듯한 묵직한 중저음이 있다. 여인의 교태가 지어내는 꽃잎 같은 소리가 있는가 하면 모리배의 음흉한 소리도 있듯이 목소리의 양태는 다종다양하다. 목소리에도 지문이 있다지 않은가. 경찰이 얼굴 없는 목소리를 분석해 범인을 잡기도 하는 것은 소리의 파장에서 정체를 인식하고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딸기~~~~, 참외~~~~.” 까무잡잡하게 햇볕에 그을린 노인네의 커다랗게 외치는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온다. 리어카에 딸기, 참외 등을 싣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목소리가 가뭄에 타들어가는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다. 삶이 녹록지 않았음이다.

살다가 원통하거나 서러우면 목소리부터 떨려 나온다. 좋은 일이라도 있어 기분이 들뜨면 목소리가 새소리처럼 싱그럽다. 화가 나면 목소리 톤도 올라간다. 게다가 몸이 피곤하면 목부터 잠긴다. 목소리가 사람의 희로애락과 몸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현직에서 1학년 담임을 할 때 학년 초에 특히 힘이 들었다. 아이들이 종알종알 온종일 말이 많다. 그들에게 일일이 답을 해주며 요모조모 일러 주다 보면 내 약한 성대가 몸살을 앓았다. 목소리가 쉬고 갈라지다가 급기야 소리가 안 나와 꽉 막힌 굴뚝처럼 답답했다. 참다못해 이비인후과를 찾으면 성대결절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이 곤혹스러웠다.

내 친구 L은 별나다. 생전 목소리가 쉰 적도 없고 갈라진 적이 없다고 한다. 목소리가 생의 만족함으로 표현되나. 늘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평소 산에 오를 때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친구의 또랑또랑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건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선천적으로 성대가 약한 건지 노래 몇 곡에 목이 쉬고 목감기 한번 걸리면 오랫동안 목이 잠겨 애를 먹는다. 튼튼한 성대에 찰진 음성을 지닌 그 친구가 부럽다.

우리 몸은 목소리의 공명 장치다. 목소리가 아랫배를 쥐어짜서 곰탕 국물 같은 진한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가슴을 울려서 한이 서린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나는 웅숭깊은 소리는 엄두도 못 내고 타고난 생목으로만 소리를 내고 있다. 인간의 발성기관은 신이 내려준 천상의 악기라고 한다. 내 목소리는 신이 정품 마크를 달지 못한 불량품은 아닐지.

목소리는 마음을 담는 소중한 그릇이다. 목소리에 푸짐하고 올찬 마음을 담아볼 일이다. 내 삶의 진심을 그득그득 담아서 세상 속으로 울려 퍼질 수 있다면 탁하거나 쉬지근하거나 무에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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