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사관 30년 외길 인생
언어의 다양성 익혀야 폭넓게 기록

박정숙 청주시의회 주무관.

[동양일보 이민기 기자]“속기사들이 작성한 기록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영원히 문서로 남는다.”

청주시의회 사무국 의사팀에서 속기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정숙(53) 주무관의 말이다. 좀처럼 빛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그림자 사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박 주무관은 청주 출신으로 중앙여고와 청주대를 졸업하고 1993년 강화군의회 사무과(약 4년 근무)에서 속기업무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청주시의회에서만 26년 가량을 일한 ‘속기의 달인’이다. 그동안 충북도, 청주시 등 도내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속기와 관련된 상은 모두 휩쓸었다. 속기6급 공무원이지만 청주시와 시의회 안팎에서 박 주무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인사 이기도 하다.

주위에서는 속기의 달인이란 닉네임으로 부르지만 평소 박 주무관은 달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변화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라는 말을 자주한다고 한다.

한 분야에서 30년을 외길로 근무한 사람은 뭔가 달랐다. 마치 고문서를 또박 또박 기록하는 수도원의 수녀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랜 세월 시의회에서 프로 속기사로 일하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의원들의 공개·비공개 발언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할 말은 하고 논란이 될 듯한 말은 아예 귀띔 조차 하지 않았다.

박 주무관은 속기업무가 보조적인 취급을 받고 이런 맥락에서 자신이 도구로 비쳐지는 게 싫어서 행정직으로 전직한 적도 있다. 하지만 2년 가량 행정직으로 근무했던 시절의 업무 역시 속기였다. 그는 “공무원 직렬 중 편한 직렬은 없지만 속기직은 더욱 알아봐 주거나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고 전직 시험에 응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30년 세월은 자연스레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큰 관심으로 이어졌다. 동일한 표현이라도 언어는 각양각색으로 구사된다. 표준어로는 ‘이쪽 저쪽’이지만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짝 저짝’으로 말하는 게 현실이다. 언어가 연령대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지역색(사투리)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선 한글 에다가 영어가 합쳐진 무수한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박 주무관은 아는 만큼 들리고 나아가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넓혀야 함은 물론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각종 언어의 형태를 익혀야 보다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업무를 하는 이들은 언뜻보면 그림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없어선 안 될 빛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기 기자 mkpeace21@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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