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미나 기자]올 추석 연휴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28일부터 개천절인 3일까지 6일간의 긴 휴일을 맞는다.

추석 연휴 극장가는 연휴 첫날 동시 개봉하는 추석 개봉작 3편과 이미 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2편 등 한국영화 5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석 개봉작 3편은 연휴에 강한 코미디나 드라마 장르로, 스타 배우를 내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거미집',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연구소', 강제규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1947 보스톤'에 현재 주말 극장가를 사로잡고 있는 유재선 감독의 스릴러 영화 ‘잠’과 돌아온 코미디 프랜차이즈 ‘가문의 영광:리턴즈’가 가세한다.

풍성한 한가위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 5편이 긴 휴일, 골라보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1947 보스톤
1947 보스톤

 

●1947 보스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당시 손기정이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어야만 했던 사실도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보여준 장면으로 한국인의 기억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해방 직후인 1947년 손기정이 자신의 뒤를 이을 유망주 서윤복의 감독이 돼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이곳에서 서윤복이 태극 마크를 달고 우승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이 이야기를 '쉬리'(1999)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유명한 강제규 감독이 스크린에 재현해냈다. 그의 신작 '1947 보스톤'에서다. 

1947 보스톤
1947 보스톤

 

이 영화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하정우)이 월계관을 쓰고 시상대에 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얼굴이 어두운 건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도 그날의 울분을 삭이며 살아가던 그는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서윤복(임시완)의 훈련을 맡는다. 베를린 올림픽 때 동메달을 따 손기정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던 남승룡(배성우)이 조력자가 된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해방 정국이라고 불리는 혼란스러운 시기다. 해방 직후 38선을 경계로 북쪽엔 소련군, 남쪽엔 미군이 들어왔고, 1947년 당시 남쪽은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수립된다. 

1947 보스톤
1947 보스톤

 

손기정이 이끄는 대표팀의 보스턴 마라톤대회 출전은 처음부터 갖은 난관에 부딪힌다. 미국에서 한국은 난민국으로 분류돼 대표팀의 입국에 거액의 보증금이 필요하고, 현지 보증인까지 세워야 한다. 이 영화에선 보스턴의 사업가인 한국 교민 백남현(김상호)이 보증인으로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은 미국 군용기를 타고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보스턴에 도착하고, 백남현이 합류한다. 

이들이 보스턴에서 마주하는 난관들은 일제 강점기 손기정이 겪어야 했던 설움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는 대표팀의 설움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하이라이트인 보스턴 마라톤대회를 향해 간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마라톤 경기 장면은 15분 정도의 분량으로, 실제 경기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서윤복이 우승한다는 사실을 아는 관객도 상당한 박진감을 느낄 만하다. 

서윤복이 결승선에 도달하는 순간, 손기정과 서윤복, 나아가 당시 한국인이 겪었을 모든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누군가는 한국인이 슬픔과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고 했지만, 서윤복은 마라톤 경기의 마지막 스퍼트로 폭발시키는 것 같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요소가 없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슬픔과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 주는 감동, 비행기를 타기도 쉽지 않던 시절 미국에 처음 가본 한국인들이 좌충우돌하며 빚어내는 웃음은 '1947 보스톤'을 가족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만한 영화로 만들어낸다. 

손기정을 연기한 하정우는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 그의 절제된 연기는 과거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손기정 역에 잘 맞는 듯하다. 

임시완은 마라톤 선수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출발선에 선 서윤복의 상기된 표정과 육체적 고통마저 잊은 듯 달리는 모습은 실제 마라톤 경기의 느낌을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그는 1997년 춘천 국제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여자 마라톤 신기록을 세운 권은주 선수로부터 3개월 동안 현장 지도를 받았다. 

강제규 감독은 천만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이번에도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놨다. 그는 11일 시사회에서 '1947 보스톤'에 대해 "인간이 소중한 꿈을 이뤄나가는 승리의 도전"이라고 소개했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 보스턴이지만, 촬영은 호주 멜버른에서 이뤄졌다.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봄에 개최됐지만, 영화는 겨울에 제작돼 촬영지를 남반구에서 찾았다고 한다. 27일 개봉. 108분. 12세 관람가. 

 

천박사 퇴마연구소
천박사 퇴마연구소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군도'(2014)를 통해 검술 실력을 뽐낸 배우 강동원이 다시 한번 칼잡이가 됐다. 김성식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에서다. 

가짜 퇴마사 천박사 역을 맡은 강동원은 몸에 착 붙는 양복 차림을 한 채 귀신을 잡는다는 '칠성검'을 휘두른다. 긴 팔다리를 활용해 선보이는 액션은 판타지 게임 속 한 장면 같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CG(컴퓨터 그래픽)까지 더해지면서 강동원은 이 게임의 주인공이 된다. 

김 감독은 강동원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다. 처음에 천박사는 사기꾼으로 묘사된다. 그는 귀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 퇴마 의식을 벌이고 돈을 번다. 순진한 사람들을 화려한 말발로 속이고 랩을 하듯 주문을 외는 모습은 강동원이 '검사외전'(2016)에서 보여줬던 능청스러운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천박사 퇴마연구소
천박사 퇴마연구소

 

극 초반부까지 영화는 평면적인 코미디로 보인다. 그러나 진짜로 귀신을 볼 줄 아는 유경(이솜 분)이 나타난 뒤 장르는 호러로 바뀐다. 유경은 퇴마 연구소를 찾아가 현금다발을 내밀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천박사에게 그는 단숨에 '고객님'이 된다. 

유경과 함께 찾은 그의 마을은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초상집이고 불길한 안개가 곳곳을 휘젓고 다닌다. 유경은 귀신 들린 동생을 천박사에게 보인다. 천박사는 난생처음 겪는 귀신과의 조우에 당황한다. 강동원이 구마 사제 역을 맡았던 '검은 사제들'(2015) 장면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천박사는 마을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몸에 자유자재로 빙의할 수 있는 '반 귀신' 범천(허준호)을 쫓기로 한다. 범천은 전설적인 무당이었던 천박사의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유경의 눈을 탐내는 악귀다. 

천박사와 그의 동료 인배(이동휘), 황 사장(김종수), 유경 일행이 범천 일당을 추적하는 스토리는 흡사 모험물을 보는 듯하다. 그 과정에 민속 신앙과 오컬트 요소를 넣어 재미를 더했다. 강동원이 도사로 변신한 '전우치'(2009)가 슬쩍 떠오르기도 한다. 

후반부에는 액션 장면이 집중됐다. 천박사와 범천의 맞대결이 하이라이트다. 할아버지가 남긴 칠성검을 든 천박사와 보기만 해도 무거운 장검을 든 범천이 빛을 내뿜으며 결투한다. 허준호는 구부정한 자세로 달려오는 장면만으로도 공포감을 줄 만큼 무게감 있다. 

천박사 퇴마연구소
천박사 퇴마연구소

 

영화는 액션과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장르가 잘 어우러졌다. 다만 코미디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은 아쉽다. 대신 카메오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웃음을 안긴다. 김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 등의 출연 배우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강동원은 맞춤옷을 입은 듯 배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다른 배우가 천박사 역을 연기하는 게 잘 상상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동안 선보여온 다양한 작품의 캐릭터가 겹쳐 기시감을 줄 수는 있다. 

영화에서 설정을 대략 설명하기는 하지만, 원작인 김홍태·후렛샤 작가의 웹툰 '빙의'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점도 한계다. 

김 감독은 19일 시사회에서 "원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가져온 것은 천박사 캐릭터와 빙의"라면서 "특히 빙의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강동원과의 작업에 관해서는 "강동원이라는 위대한 피사체를 담아야 하는 제 그릇이 너무 작다"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인데 제가 부족했다"며 웃었다. 

'천박사'는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과 함께 추석 연휴를 겨냥해 개봉하는 작품 중 하나다. '천박사'는 두 영화를 따돌리고 예매율 1위에 올라 있다. 

강동원이 코믹 캐릭터를 연기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전우치', '검사외전' 등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도 '천박사'에는 흥행 청신호다. 27일 개봉. 98분. 12세 관람가. 

 

거미집
거미집

 

●거미집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을 보고 나면 두 편의 영화를 한 번에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그린 '거미집'은 그 안에 또 한 편의 영화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초 한국의 영화감독 김열(송강호)이 '거미집'이란 제목의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다. 

김열이 배우, 스태프와 좌충우돌하며 영화를 찍는 이야기가 블랙 코미디라면, 흑백 영상으로 나오는 영화 속 영화는 스릴러의 느낌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주거니 받거니 교차하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싸구려 치정극이나 만든다'는 평론가들의 혹평에 시달리는 김열은 '거미집'이란 영화를 다 찍어놓은 어느 날 이 영화에 관한 꿈을 꾼다. 

거미집
거미집

 

꿈에서 본 대로 영화의 결말 부분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란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딱 이틀이면 된다"며 재촬영을 밀어붙인다. 

그런 김열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작사 '신성필림' 대표 백 회장(장영남)은 '걸작'이란 말에 냉소적인 반응부터 보이고, 이민자(임수정), 강호세(오정세), 한유림(정수정) 등 주연 배우들은 다른 작품 촬영 스케줄이 꼬인다며 입이 툭 튀어나온다. 

신성필림의 후계자이자 재정 담당인 신미도(전여빈)가 김열을 지지하고 나서지만, 그도 김열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다. 

유신정권 시절인 당시 정부의 검열도 걸림돌이다. 공무원들은 제집 드나들 듯 촬영장에 찾아와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다. 

고지식해 보이는 검은 뿔테 안경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김열은 영화밖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다. 세트장에 불이 번져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와중에도 그는 카메라로 찍은 장면이 제대로 나왔는지에만 정신이 쏠려 있다. 

좌절에 빠진 김열이 세상을 떠난 스승 신 감독의 환영(幻影)과 대화하는 장면은 예술가의 고뇌를 보여주는 듯하다. "내가 재능이 없는 걸까"라는 김열의 물음에 신 감독은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라며 "그걸 믿고 가라"고 격려한다. 

김열이 순수하기만 한 예술가인 건 아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엔 스승의 높이에 도달하지 못한 열등감과 세상이 인정하는 걸작을 내고 싶다는 조급함이 있다. 

그렇게 욕망으로 가득하고 결함 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빚어내는 예술이 영화라고 김지운 감독은 말하고 싶은 걸까. 

어쩌면 영화는 우리 인생을 가장 많이 닮은 예술 장르인지도 모른다. 꿈은 항상 현실에 부딪히고, 삶은 우리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시간이 흐르면 그 꿈마저도 일그러진 욕망의 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의심에 빠져들기도 한다. 

'거미집'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영화에 깔린 건 결국 영화 예술에 대한 김 감독의 깊은 사랑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송강호는 이번 작품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연기를 펼친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낸 영화가 드디어 극장에 오를 때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비추는 김열의 표정은 송강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가 아닌가 싶다.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 전여빈, 장영남도 개성적인 연기로 한데 어우러져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걸그룹 출신인 정수정은 김열의 말을 가장 안 듣는 배우 한유림 역을 능숙하게 소화하면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들이 흑백 영상으로 나오는 영화 속 영화에서 1970년대 배우의 발성을 재현해내는 것도 볼거리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즘 배우들이 옛날 영화의 과장 섞인 말투와 몸짓을 따라 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거미집'의 영화 속 영화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재미가 있다. 1970년대를 풍미한 고(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 보듯 남녀의 치정 사건에 거미를 소재로 끌어들여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김지운 감독은 14일 시사회에서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을 (따로) 장편으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열이 영화를 찍는 세트장, 제작사 사무실, 배우와 스태프의 의상 등은 1970년대의 분위기를 잘 살려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김추자의 '나뭇잎이 떨어져서', 장현의 '나는 너를',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등 흘러간 노래들도 당시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거미집'은 지난 5월 76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기립 박수를 받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27일 개봉. 132분. 15세 관람가. 

 

가문의 영광:리턴즈
가문의 영광:리턴즈

 

●가문의영광:리턴즈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한국 특유의 가족 문화에 조폭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개성적인 코미디를 빚어내면서 관객들의 오랜 사랑을 받았다. 

1편 '가문의 영광'(2002)을 시작으로 5편 '가문의 영광5-가문의 귀환'(2012)에 이르기까지 관객 수를 모두 합하면 2천만명에 달한다. 

5편이 나온 지 11년 만에 6편이 나왔다. 올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하는 '가문의 영광: 리턴즈'다. 

이 영화는 1편인 '가문의 영광'의 리메이크작으로, 1편의 이야기를 충실히 따르되 요즘 세대의 감수성에 맞춰 디테일에 변화를 줬다. 

주인공 대서(윤현민 분)는 스타 작가로, 어느 날 밤 클럽에서 놀다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뜬 그는 바로 옆에 말 한마디 섞어본 기억이 없는 여자 진경(유라)이 누워 있는 걸 보고 기겁한다. 

가문의영광:리턴즈
가문의영광:리턴즈

 

사무실로 출근한 대서를 진경의 오빠 석재(탁재훈), 종면(정준하), 종칠(고윤)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대서에게 홍덕자(김수미)를 정점으로 한 가계도를 보여주면서 "하나뿐인 여동생과 동침했으니 책임을 져야지"라고 한다. 

이들이 물불 가리지 않는 조폭 집안이란 걸 알게 된 대서는 어떻게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이들은 대서를 호락호락 내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대서는 자기도 모르게 진경과 사랑에 빠진다. 

이야기의 흐름은 1편과 거의 같다. 1편을 본 관객이라면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침대에서 잠을 깬 대서가 이불 밑으로 나온 두 발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중에 갑자기 발이 부르르 떨리면서 진경이 눈을 뜨는 것도 1편과 같다. 

가문의 영광:리턴즈
가문의 영광:리턴즈

 

1편을 본 관객은 양가의 상견례 자리에서 대서 부모의 탐탁지 않은 반응에 직면한 홍덕자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이 영화는 몇몇 설정에 변화를 줘 새로운 느낌을 더하긴 했다. 대서가 작가인 것도 1편의 대서가 서울대 법대 출신의 대기업 직원인 것과는 대비된다. 1편에서 진경이 속한 조폭 집안의 수장은 남성이지만, 이 영화에선 여성인 것도 차이점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이 1편을 거의 그대로 따르다시피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편이 나온 지 21년이나 지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야기의 중심엔 대서와 진경이 술에 취해 한 침대에서 잔 사건이 있지만, 이에 대한 정서는 1편 때의 관객과 요즘 관객이 같을 수 없다. 관객의 공감도가 그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의 출연진이 코믹 연기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출중한 배우들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액션 장면은 길지 않지만, 상당히 역동적이다. 특히 홍덕자 집안의 배신자 얏빠리 역을 맡은 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패싸움 장면에서 장기를 발휘한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 전편을 제작하고 4편을 연출한 정태원 감독과 2편, 3편, 5편을 연출한 정용기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정태원 감독은 시사회에서 "'가문의 영광'은 과거에도 추석 연휴에 개봉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추석이 적기라고 생각했다"며 "좋은 영화들이 많지만, 우리 영화는 장르가 다른 만큼 골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개봉. 99분. 15세 관람가. 

 

잠

 

●잠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 어느 날, 옆에 잠든 남편 ‘현수’가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왔어” 그날 이후,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현수’.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는 잠들면 가족들을 해칠까 두려움을 느끼고 ‘수진’은 매일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치료도 받아보지만 ‘현수’의 수면 중 이상 행동은 점점 더 위험해져가고 ‘수진’은 곧 태어날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갖은 노력을 다해보는데….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잠’은 지난 6일 개봉해 17일 1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하며 극장가 알짜배기로 거듭나고 있다. 극장 매출액을 기준으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약 80만명이다.

'잠'은 개봉 전 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수면 중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남편과 아내의 분투를 독특하고 스릴 있게 그렸다는 평이다.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잠’의 흥행은 관객들의 입소문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상상과 해석을 더할 수 있는 '잠'의 열린 결말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잠

 

특히 ‘잠’은 관객들 사이에서 '결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복선을 살펴보고 또 다른 시선에서 영화를 감상하고자 하는 관객들의 N차 관람 열풍 또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열연과 탄탄한 장르적인 재미가 세대불문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어 '잠'의 흥행 열기는 추석 연휴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6일 개봉. 94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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