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하재영 시인

[동양일보]지인이 왔다. 직장 생활했던 포항에서 어울렸던 분들이다. 지난 봄 아들이 식당을 개업했는데 축하하러 온다는 것을 내 바쁨으로 미루었었다. 오백 리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온 지인의 방문은 그야말로 공자의 ‘유븅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란 말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도착하면 어디를 모시고 갈까?

30년 이상 생활했던 포항에서 청주로 이사한 후 그곳 많은 사람이 내 사는 곳을 찾아왔다. 구멍가게 카페를 운영하고, 책을 넣어 둔 서고가 있다는 것이 소문났는지 차를 대절해 오기도 하고, 지나던 길에 들르기도 했다. 일부러 오신 분들에게는 김수현 아트홀, 수암골,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분원을 안내했다. 그곳만 구경해도 한 나절은 후딱 흘러갔다.

12시 넘어 도착한 지인들과 아들이 세프로 일하는 식당으로 갔다. 아들은 음식을 전공했다. 호텔과 백화점에서 칼을 만지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내가 청주로 오면서 아들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따라 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나름 번듯한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이룬 것은 이곳으로 온지 2년이 흐른 올봄이었다. 아들은 ‘손님들이 음식을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것이 꿈이고 즐거움’이라고 했다.

식당에 도착한 지인들은 우동과 돈까스를 앞에 두고 화기애애 웃음꽃을 피웠다. 우동 면 한 가닥 한 가닥 젓가락으로 입에 넣으며 음미했다. 글과 그림에 깊이가 있는 지인이 맛깔스럽게 먹으며 ‘최고!’라고 아들을 향해 사인을 보냈다. 한 분은 서울에 갈 때마다 유명 돈까스집을 자주 찾는데 그곳보다 식감이 좋다고 아들을 불러 칭찬한다. 격려의 말이지만 미덥지 않던 아들 식당 음식 맛에 부모로서 염려를 놓게 되는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된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 문화제조창이었다. 공예는 편리함의 추구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보다 유용하면서 가치 있기 위해서는 예술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번 주제는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였다. 전시장은 그런 것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작가들의 작품은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해외 작가 작품 앞에서는 마치 그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그곳 관람 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분원에 들렀다. 피카소 도예 전시는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와 맥을 잇는 특별함을 느끼게 했다. 멋졌다. 2층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변관식의 ‘무장춘색’, 백남순의 ‘낙원’ 두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일전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전시 때 왔던 포항 손님은 김환기 그림을 보면서 “청주에 살고 싶다"고 했었다.

그날 늦은 시각 포항에 도착한 지인은 “덕분에 점심 맛나게 먹고 활기차게 꾸리는 모습에 기뻤습니다. 눈 호강까지 하도록 일정 챙겨줘서 고맙습니다”고 말했다.

잠자리에 들며 이게 감사하게 사는 재미 아닐까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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