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혁명은 낭만주의자가 시작한다던가, 앞으로 올 좋은 시절을 가장 크게 생각한다는 말도 될까. 역사 속 혁명에는 체제 전복할 열망과 그걸 막으려는 폭력이 등장한다. 폭력으로 치자면 전쟁만 할까마는. 우리의 촛불같은 무혈이 아닌 무서운 전쟁 이야기가 자주 자꾸 들려온다. 해를 넘기며 전쟁 끌고가는 나라도 있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데 우리도 백척간두일까.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지, 지난 이십 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확인했음에도. 제 정신이라면 누가 그런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겠냐고, 그것도 몇십 년 상관에 두 번씩이나 거의 전 세계가. 와중에 놀랍도록 착하기도 비정상으로 잔혹한 게 인간이라는 확인도 했다던가, 모두 죽여 없애려는 자와 몇 명이라도 살리려는 이의 방향 다른 노력들.

우리 민족은 두 번째 세계전쟁 말미에 해방을 맞고, 그 댓가로 일본이 쳐들어오기 전에 하나였던 나라가 두 동강 나는 참사를 겪었다. 역사에 가정이 무슨 쓸모일까마는 해방은 잘되기만 한 일인가, 조금 늦더라도 나라를 온전히 찾는 게 나았을지 새로운 문제가 남았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 현대사를 계속 뒤틀리게 만든 육이오 사변, 동란, 전쟁,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인간은 명분만 내걸면 신의 아들, 메시아를 잡아 죽일 만치나 잔혹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폭력적인가를 지목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했다. 지배자 로마의 폭정이 심해 어려운 시절이니 서로 가엾이 아끼며 살라는 말에 곤핍한 이들은 환호했고, 종교나 정치권력 가진 이들은 죽이고 싶어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다는 과정에 여러 이해관계들이 병존했다. 우리 죽느니 그 하나 죽는 게 낫다는 입장, 무죄는 확신하지만 자기 출세와 바꿀 수 없는 입장, 현실 무력이 너무 두려워 입 닫은 입장, 사랑하라는 예수를 독립운동에 방해자로 여긴 입장, 예수가 메시아니 극도의 한계에 몰리면 능력 발휘로 로마에게 천벌 내려 없애주기 바라는 입장.

힘은 사용할 명분을 찾는다. 명분이 주어지면 폭력은 정당한 수단이 된다. 사람은 제 행위를 악한 범주에 넣지 않는 습성이 있다. 저를 변호할 말들은 언제나 넘쳐나고, 죄인같은 단어는 가던 길 돌이킴이 아니라 심정을 격동시키기도 한다. 하나님은 인간 잘못을 지켜보지만 단번에 세상 뒤집는 일 하지 않을 테니 너희들이 잘 타협하고 아껴가며 살아내보라고 성경에 적으셨다. 자유의지가 있으니 착한 걸 골라가며 살 수도 있다고, 쌈박질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고, 착한 걸 고르는 게 서로 살 길이기도 하다고. 사람은 그게 어렵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고 힘이 없으면 주눅 든다.

뭔가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 어릴 적 목사님께 들었다고 입사동기 목사교수는 말했다. ‘첫째는 자기에게 보람있는가. 둘째는 다른 이에게 유익이 되는가. 셋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점검하는 거라는 말씀. 첫째와 둘째가 충족되어도 짬짜미해서 둘 다 이익보는데 누가 손해본다면 옳지 않다. 그래서 세 번째 항목은 소중하고 준엄하다고. 하나님이 보신다는 걸 기억하는 거라고. 제 이해관계 걸리면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게 되니 그걸 넘어서는 기제는 신을 상정하는 것, 하나님이 머리카락도 셀 수 있을 만치 정확한 분이라는 가르침이다.

나라 안팎의 경제 평화 안녕이 흉흉하다. 나라마다 저 살아갈 궁리하는데 남북은 여러 나라 끌어들이며, 또는 여러 나라에 끌려다니며 철 지난 이념과 위험을 누적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시골 서생인 처지에 나라 쌈박질하는 미친 결정 않내리도록 할 힘은 없으니 뭐라도 하기 위해 기도를 생각한다. 전쟁을 보람있고 가치있다고 믿을 정신머리는 없겠으나 혹시라도 뭐에 홀려 미사일푹 쏘아 올리고, 퍽 되쏴부치다가 큰 사고 저지르지 않기를, 어느 집단이건 우두머리는 폭력이 아니라 평화 깨지 않을 생각부터 해야 한다고. 쌈박질은 해서 이기더라도 않느니만 못하다는 게 우리 어릴 적에는 많이 들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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