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황석두 루카의 안식처…신앙의 길목이며 순교자들의 보금자리

권상우 주임신부

[동양일보 김진식 기자]천주교 연풍성지(충북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 홍문2길 14)는 조선 정조 15년 신해교난(1791년) 이후 연풍땅에 은거하며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들이 순조 1년(1801년) 신유교난 때 처형당한 자리에 1974년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교회다.

연풍성지(주임신부 권상우 베드로)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골에서 태어난 교인으로 고종 3년(1866) 충남 보령군 오천면 갈매못에서 순교한 한국천주교 103성인의 한사람인 루카 황석두(1813~1866년)의 입상과 묘가 있다. 왼쪽에는 순교현양비를 세웠으며 문앞에는 처형석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황석두 루카의 고향이자 안식처인 연풍 성지는 신앙의 길목이며 순교자들의 보금자리다.

부유한 양반집 자손으로 태어난 황석두는 나이 스물에 과거시험 길에 나섰다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포기했다. 이에 가족들은 그의 행동에 모진 수모를 이어가며 신앙에 반대했다. 어느날 아버지가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는 강요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다”며 목을 맡기고 눈물을 떨구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특히 황석두 루카는 신앙에 눈뜬 뒤 줄곧 정결을 지키는 동정부부로 살면서 언제나 기도안에서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복음전파와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며 일생을 교회에 헌신했다. 그 당시 페레올 주교가 그를 사제로 서품하려 했으나 부인이 기거할 정식 수녀원이 조선에 없다는 이유로 교황청의 허락을 얻지 못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충남 보령시 오천면 갈매못 해변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연풍 성지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3년 연풍 공소로 사용하기 위해 옛 향청 건물(충북도 문화재자료 제13호)을 사들이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300년이나 묵은 이 건물을 매입할 당시만 해도 이곳이 순교 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입 후 논과 집 터 정리 작업 중에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발견됐다. 그중 처음으로 발견된 형구돌은 1974년 절두산 성지로 이전됐다.

1968년 10월 6일 시복식 후 황석두 성인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성지 개발이 가시화됐다. 1979년 순교 현양비를 세우고 그해 가을 평해 황씨 문중 산에 묻힌 황석두 성인의 유해 확인을 거쳐 다음 해 임시로 수안보 본당에 안치했다가 1982년 8월 25일 노기남 대주교의 예식으로 연풍 성지로 천묘했다.

연풍성지에는 다섯 성인상과 반석, 대형 십자가와 경당, 향청과 야외제대와 성모상 등이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괴산 김진식 기자wlstlr12202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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