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청주 내덕동주교좌성당 신부

반영억 청주 내덕동주교좌성당 신부

[동양일보]단풍의 절정 시기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나무들의 월동 준비 과정 안에서 광합성작용, 수분의 조절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단풍이 들지 않는 늘푸른나무의 잎 내부에는 얼지 않는 부동액 같은 성분이 있어 겨울에도 광합성을 일부 유지 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고 한다.

이 계절에 세상 곳곳에는 애타게 평화를 갈망하고 부르짖으며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갈망하지만 정작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5,9). 말하지만 분열과 다툼이 만연해 있다. 입으로는 “우리는 물고 뜯고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서로 의지해 사랑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라고 하면서도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 비난하고 힐책하며 싸우기에 여념이 없다. 여당과 야당은 물론 자기 당 안에서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 계층 간, 세대 간도 다르지 않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도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평화롭다. 더 많이 차지하고 채우려 하며 이기려고 할 때 거칠어지고 사나워진다. 마음을 열어 자연에서 여유를 배웠으면 좋겠다.

제네시스 수도회 ‘토마스 머튼’ 은 평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랑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 생각에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미워하기보다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욕망과 무질서를 미워하십시오! 그것들이 전쟁의 원인입니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불의를 미워하고 폭군을 미워하며 욕심을 미워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 안에 있는 그것들을 먼저 미워하십시오.”

세상과 주변이 혼란한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일하지 않은 나의 게으름 때문은 아닌가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을 경계하고 타인에게 관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그러니 내면의 평화가 먼저다. 마음을 맑고 밝게 가꾸기 위한 모든 희생과 수고에는 귀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단순한 욕구 충족의 안락함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충만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평화유지의 필수 요건은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간의 관계에서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의 결핍은 불안과 평화의 혼란을 가져오는 불의를 일으킨다.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 이익 추구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주는지 우리는 알고 있으며 보고 있다. 서로 다투고 갈라지며 소유와 지배를 쟁취하고 ‘네 것’과 ‘내 것’이라고 냉정하게 나누는 과정 안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사람들 마음 안에 분노와 불의가 자라난다. “모든 전쟁은 언제나 패배만 남기며 인간의 형제애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그러므로 사랑이 회복되어야 한다. 참된 사랑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상대를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기적인 마음을 절제할 줄 알며 상대의 삶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 상대의 실수를 이해하고 도와줄 방법을 알고 그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안다. 사랑의 회복 없이 진정한 평화는 없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공격받은 이들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증오와 폭력, 복수를 부추기며 서로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중동에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 곧 정의와 대화, 형제애의 용기에 입각한 평화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

근원을 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남과 북을 넘어 지역과 계층, 이념 갈등, 세대 간 분열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도 흔들림 없이 사랑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평화는 보편적 가치이자 모든 사람을 위한 선이며 결코 힘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랑이 증오를 이기고 형제애가 배척을 이기고 진정한 인간애가 잔인함을 이길 수 있으며 그 안에 평화가 깃든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고 공동선을 위해 일할 사람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내려놓음의 빛나는 아름다움이 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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