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오르락내리락하기는 하지만 여론조사의 흐름을 보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 국민의힘 지지도, 더불어민주당 지지도, 그리고 딱히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모두 30%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국민이 30%대에 불과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무당층의 두께가 집권 여당이나 거대 야당 지지도와 경쟁하는 듯한 모양새 또한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라고, 집권 여당은 ‘대통령이 우리 편인데 무엇을 못 할까 보냐’라고, 거대 야당은 ‘우리가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무엇을 못 하고 무엇을 못 막을쏘냐’라고, 제각각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민 눈에는 되는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무당층이 고작 30%대밖에 안 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며, ‘대통령이나 여야 정당에 대한 30%대 지지도가 아마도 강요된 지지율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국민을 섬기겠다고 귀가 따갑게 얘기하는데, 과연 ‘국민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그런 말을 뇌까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입에 발린 말인지, 듣는 데 익숙해진 국민은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거대 야당은 혁신위를 띄웠으나 소란과 소문 끝에 문을 닫았고, 집권 여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참패하고 나서야 무언가를 고쳐보겠다고 혁신위 가동에 들어갔다. ‘스스로 바뀌기를 마다하고 있는 걸 과연 바깥 사람의 손으로 고칠 수 있을까?’라는 것이 혁신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솔직한 심정이다.

대통령, 집권 여당, 거대 야당 모두 독선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혁신은커녕 한국 정치 자체가 암울한 과거로 뒷걸음질 친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독선(獨善)은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일’이다. 그러나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옳을 수 있기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가장이 독선적이면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독선적인 기업의 수장은 사원 전체와 그 가족의 생계를 막연하게 하며, 대통령과 정치권이 독선으로 흐르면 국가와 국민이 모두 도탄에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 정치권, 특히 선출직이 지극한 자기우월주의에 빠져 자기들은 절대로 틀리지 않고 오로지 옳기만 하다는 확신에 차 있다면 그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구나 저 혼자만이 옳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당정치의 기본은 각 정당이 자기들의 이념과 정책을 국정 전반에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정책이 서로 다른 타 정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안을 도출해 내는 상생의 정신이다. 대통령 또한 머릿속에 담고 있는 생각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주변의 보좌진과 국무위원들뿐만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 정당의 정책, 대통령 한 사람의 국정 비전은 다수의 의견에 비해 항상 열위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선은 아집에서 비롯된다. 아집(我執)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정치권이 아집을 버리지 못하면 나라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너희는 그저 나만 따르라’는 무언의 압력은 서로 너무 거리가 있지 않은가? 아집을 버리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옳은 길이 보일 것이다. 비우면 채워질 것이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編)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孔子)께서는 네 가지를 근절하셨으니(子絶四),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으시고(毋意), 반드시 이루려 하지 않으시고(毋必), 우기지 않으셨으며(毋固),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없으셨다(毋我).

정치인이 언감생심 공자님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듣고 무언가를 깨달을 수는 있겠다 싶어 드리는 말씀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