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박재필 청주청북교회 담임목사

[동양일보]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포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끝날 줄을 모른 채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개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천 명이 사망을 하고, 부상을 당했다. 또 연약한 어린이와 여성들, 노인들의 피해가 심각하고, 현지에 있던 외국인들까지 사망과 부상을 피해를 입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인해 이곳은 식수와 식량, 의약품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 되었고, 연료의 부족으로 단 하나뿐인 발전소마저 멈춰 전기 공급이 되지 않아 수백 년 전의 생활로 되돌아간 것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어서 이 전쟁이 멈추고 안전과 평화가 회복되어야 한다.

표면상으로는 이번 전쟁이 하마스의 포격 때문에 촉발된 것 같지만 그 이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간섭하면서 주민들의 분노를 유발시킨 것도 한 원인이다. 그리고 이들의 갈등과 분쟁은 수십 년, 수백 년 된 역사가 아니라 이미 수천 년을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쌓인 결과물이다. 기독교인들이 읽는 성경 속에서부터 이들의 분쟁과 대립은 묘사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종교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을 받는 이다. 그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이삭과 야곱의 후예들인 히브리민족이 이집트에서 430년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약 200만명 가까운 인구가 출애굽을 해서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땅인 가나안으로 귀환을 하였다. 이스라엘이 귀환을 했을 때에는 히타이트족, 가나안족, 히위족, 아모리족, 여부스족 등이 각각 이 지역을 원주민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족속인 블레셋 족속도 터를 잡고 있었는데, 이 블레셋 족속이 히브리어 ‘필리스티아’(Philistia)에서 유래하여 헬라어를 거쳐 오늘날의 ‘팔레스타인’(Palestine)이 되었다. 창세기 10장14절에 그 이름의 유래를 밝힐 만큼 성경 속에서는 초창기의 민족으로 등장을 한다.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민족은 팔레스타인의 주도권을 놓고 수천 년 동안 대립을 해왔다. 한국과 일본, 영국과 프랑스 관계의 이웃 앙숙은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대립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두 민족은 명운을 걸고 싸워왔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역사만 해도 어느 시대는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이 블레셋을 지배하였고, 또 다른 때는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짧게는 양측의 식민지 시대가 수년 혹은 수십 년으로 단기간에 끝날 때도 있고, 때로는 100년 이상의 긴 식민지 시대를 서로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 한쪽을 멸족 시키지 않으면 자신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싸운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지금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눌러 지배하고 있는 때이고, 팔레스타인은 역사에서 그렇게 해왔듯이 그들의 지배에 항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배 구도는 또 언제 역전이 될지 알 수 없다. 인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밝힌 ‘피의 선’(Blood Line)의 가장 극렬한 충돌의 현장이 이곳일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정말 끝까지 싸워야 하나? 성경 속에서 이들이 잠시 화목을 이루었던 역사도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블레셋 지역에 머물 때 당시의 왕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은 때가 있다. 이삭이 아브라함 때부터 소유한 우물을 정비하였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메워버렸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시 우물을 팠더니 이번에는 자기네 땅이라며 내몰았다. 다시 옮겨 우물을 팠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서로 방해를 하지 않았다. 양보와 서로에 대한 인정으로 조금씩 물러섰을 때 서로가 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결국 이번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 평화에는 공짜가 없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