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동양일보] 가을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 자연이 주는 고마움에 넋을 잃는다. 지난주 미동산 수목원에 다녀왔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에 감탄하며 고즈넉한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좋은 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구절초와 감나무에 탐스럽게 달린 노란 감을 바라보면서 가을에 흠뻑 젖어 들었다. 지금 이맘때쯤이면 어딘들 아름답지 않으랴.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도 아파트 둘레 산책로도 그 나름 울긋불긋 아름답다.

시골에 대추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말 그대로 자연농법이다. 대추가 꽤나 많이 열렸는데 막상 가을이 되니 붉은 대추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붉고 튼실해 보인 몇 개를 따보니 아뿔싸. 모두 벌레가 먹고 썩어서 건질게 없다. 올해는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덥기도 하고, 냉해도 입고 두루 두루 시련이 많았던 터. 비록 건진 대추는 몇 개 없었으나 그 와중에 잘 버티며 자라 열매까지 맺었으니 고맙고 기특하다. 이런 기후변화는 다른 과수 농사에도 큰 타격을 준 것 같다. 사과와 배도 귀하고 맛도 예전 같지 않고 온갖 자연의 시련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대추는 알의 크기가 다른 과일에 비하면 작은 편으로 2~3cm 정도이며 갓 수확한 햇과일의 무게는 10~13g 정도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보은 대추는 당도가 높아 생대추로도 인기가 많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 색이 붉다 하여 홍조(紅棗)라고도 하는데, 홍조는 찬 이슬을 맞고 건조한 것이라야 양질의 대추가 된다. 과육에는 주로 당분이 들어 있으며 점액질· 능금산· 주석산 등도 들어 있다. 씨에는 베툴린· 베투릭산· 지방 등이 들어 있어 한방에서는 이뇨강장· 건위진정· 건위자양의 약재로 널리 쓰인다. 또한, 식용으로 널리 쓰여 관혼상제 때의 음식 마련에는 필수적인 과실이다. 제상이나 잔칫상에 과실을 그대로 놓거나 조란· 대추초 등의 과정류로 만들어놓으며, 떡이나 음식의 고명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주산지는 경북의 경산, 군위, 청도와 충북의 보은 등이다’로 기록되어 있다. 대추는 옹골지다. 한방에서는 맛이 달고 그 성질이 따뜻하며 위를 편하게 하여 배가 차갑거나 설사를 할 때 유용하며 피를 맑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불면증에 좋다고 한다.

보은에서 복지관에 근무할 때 늘 대추 축제에 어르신들과 장애인분들과 함께 참여하곤 했었다. 축제장의 많은분들이 바쁜 와중에도 반갑게 맞이해주었던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지인으로부터 엊그제 보은대추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추 작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항간에 많이 알려진 축제라 많은분들이 찾아주었다는 것이다. 대추 축제 초반에 지역에서 농사하시는 분들, 사회단체에 활동하시는 분들, 지역주민들, 공무원들까지 모든군민이 나서 합심하여 서울이든 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향우회 등을 찾아다니며 정말 열심히 홍보했던 모습을 잘 기억한다. 그동안의 그런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대추축제를 성황리에 잘 치루었을 것이다. 갑자기 ‘대추 한 알’이란 시가 생각난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시인은 어느 글에서 ‘이 시에서 대추 한 알처럼 작은 것조차 거친 시련 속에서 제 존재를 빚어내는 것인데, 그 시련은 우주적이다. “대추 한 알”은 그 태풍, 천둥, 번개, 땡볕, 무서리 따위의 시련을 내치지 않고 고스란히 품는다. 그것을 품어야만 비로소 완숙이 가능한 까닭이다’라고 썼다.

비단 대추만 그럴까. 우리 삶도 그럴테지. 예쁘게 맛있게 익어가 보라고 하느님은 우리 삶에 태풍, 천둥, 벼락 몇 개는 그냥 두시는가 보다. 아무렴, 지금 또한 그간 우리가 아낌없이 바쳐 얻은 결실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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