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동양일보]“루루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루루 루루루” 가수 박건이 부른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가사 일부다. 휘파람으로 시작하는 인트로가 일품이다. 1970년대 유행한 이 노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과 함께 연령대가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삼삼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노래다.

’마로니에(marronnier)‘는 프랑스어로 '밤栗’을 뜻한다. 실제로 밤과 똑 닮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말로는 ‘(가시)칠엽수七葉樹’인데 그리 낭만적으로 들리진 않는다. 잎줄기에 일곱 개의 잎이 큰 손바닥 모양으로 붙어 있고, 열매에는 가시처럼 돌기가 돋아있어 얻은 이름이다. 마로니에 하면 프랑스 파리의 최대 번화가, 샹젤리제 거리를 장식한 마로니에 가로수를 떠올린다. 워낙 유명해서 몽마르트르 언덕, 센(Seine) 강과 함께 프랑스를 알리는 또 하나의 명물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마로니에 나무와 관련된 장소가 꽤 있다. 덕수궁 석조전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는 100년이 훌쩍 넘은 수령樹齡임에도 성성한 모습으로 역사의 뒷얘기를 품고 있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도 꾸준히 회자 된다. 2017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될 만큼 특별한 문화공간이 됐다. 서울 법원로 주변, 세종시 간선 도로변, 울산 문수 구장의 마로니에 가로수길, 순천 ‘오천 그린 광장’에 조성된 마로니에 숲길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마로니에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누가 알려주거나 관심을 두기 전에는 잘 모른다.

청주에도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물론 마로니에 숲이 울창하거나, 한눈에 들어오는 거목의 마로니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로니에 꽃말이 낭만, 정열이라고 하니, 이름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여기에 ‘詩’를 붙여보자. ‘마로니에 시 공원’은 낭만에 낭만을 더한 이름이다. 가을이란 계절과 어우러지면 마로니에 시 공원은 그야말로 절정을 맞는다.

한국의 자연유산이라고 하는 청정한 가을 하늘이 있고, 곱게 물든 단풍이 있다. 곳곳에 시비詩碑가 놓여 있고, 책을 읽거나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마음만 먹으면 시와 함께 오감으로 가을 한때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마로니에 시 공원’이다.

‘마로니에 시 공원’은 2013년 12월, 청주시에서 도시공원의 상징적 테마공원으로 조성한 30,948.8㎡ 규모의 공원이다. 청주시 청원구 주성로 233번길 32(율량동)에 있다.

10년이 됐는데 아직도 ‘마로니에 시 공원’을 모르는 청주사람이 있을까. 많다. 아직도.

엊그제 이곳에서 ‘마로니에 시 공원 축제’가 열렸다. 2023 청주 ’아이러브 포엠’ 행사도 있었다. 공원 곳곳에 전시해 놓은 국민 애송시가 온종일 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야외무대에서는 11회 ‘충청북도 시 낭송경연대회’가 열려, 시 낭송가에 도전하는 44명의 충북거주 참가자들이 경연을 벌였다. 시각장애가 있는 참가자들이 단상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암송한 시를 풀어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이날, 오랜 기간 매년 한국과 중국 연변을 오가며 동포 문인과의 교류를 주선해온 한 인사는, 5년 만에 마로니에 시 공원을 다시 찾아 벅찬 감회를 전했다. 그동안 많은 동포 문인들이 고국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마로니에 시 공원’ 무대에 함께 섰던 특별한 경험이, 연변에서 시 낭송 물결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돼서, 이제는 연변에서도 시 낭송이 고급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소식을 인사말로 전했다.

가까이에 시 공원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약속 장소로도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느린 걸음으로 시詩 공원을 둘러보는 멋스러움을 한 번쯤 즐겨봐도 좋겠다.

오늘이 ‘시의 날’이다. 어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목청껏 불렀다면, 오늘은 ‘마로니에 시 공원’에 들러 조곤조곤 애송시를 낭송하며. 가슴에 마로니에 ‘詩 한 그루’ 심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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