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럽다. 되돌아보면 늘 그래왔던 것도 같지만, 요즘 상황은 분명 특별한 데가 있다. 국내적으로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족들의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에 어떻게 공감하느냐를 놓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만 하고 있어 답답하고, 국제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 소식으로 마음이 내려앉는다. 수많은 주검들과 피를 흘리는 어린 아이의 눈빛을 차마 마주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것일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을 시작하는 자들의 심보는 과연 무엇이고, 왜 전쟁은 이토록 끊이지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을 앞에 두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쩌면 그들의 전쟁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얽혀 있을 우리 자신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다. 끊임없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과 그것에 어떻게 맞서는 것이 최선의 대응인지를 놓고 끝없는 언쟁만 벌이는 우리 정치권의 무능이 겹치면서, 혹시 다음 전쟁이 이 한반도에서 일어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절망스런 눈빛으로 헤아리게 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40개월을 군 복무를 위해 보내야 했던 내게 전쟁은 단지 상상의 것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준비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비극을 내장한 것이고, 누가 또 얼마나 죽을 것인지에 관한 예측도 쉽게 하기 어려운 혼돈과 혼란의 상황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급박한 과제이고, 그것을 위해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만 한다는 당위는 그 어떤 과업보다 앞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제와 과업을 우리들 모두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전쟁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군사력이 만만치 않고 국내정치와 국제관계를 제대로 해가면서 전쟁을 막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내야 한다는 당위는 저 곳 전쟁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 생때같은 내 아이들과 손주들을 저 비극으로부터 지켜주는 것만큼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는 우리 모두가 동의할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저들의 비극과 고통에 공감하는 일이다. 공감(共感)은 우리말이지만 영어 엠퍼시(empathy)의 번역어로 채택되어 다시 관심을 모으는 말이 되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고통과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말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우리 내면에는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는 뇌과학의 발견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맹자가 ‘우물가의 아이’ 이야기를 통해 했던 이야기가 현대과학을 통해 증명된 셈이다. 우물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자칫 빠질 것 같은 상황을 보고 누가 그냥 지나쳐 가겠느냐는 맹자의 시선은 삭막해져 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자비(慈悲)는 공감과 비슷하면서도 그 범위와 깊이가 더 넓은 개념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나와 분리된 존재일 수 없다는 자각, 즉 불교에서 동체(同體)라고 표현하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미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게 된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연결망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음에도, 인터넷을 매개로 끝없이 달려드는 정보의 홍수에 빠져 사는 우리에게서는 점점 더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화되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자칫 화면에 등장하는 피 흘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다음 장면에 나오는 유명인의 마약 소식에 묻혀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민의 자각과 실천이 절실하다. 저들의 고통이 나와 분리된 것일 수 없다는 동체의식(同體意識)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마음 깊은 곳 자리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함께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전쟁의 비극을 미리 막아내는 안보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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