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젠더 갈등이니 하는 자극적인 말들이 서구사회나 한국에서나 정치권 주변에서 만들어지고 퍼져나갔다. 이 단어가 현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커녕, 빈부격차나 세대격차 등의 문제를 남녀 사이의 갈등으로 전도시킨다는 비판이 학계와 시민사회에 비등하다. 사실 이 문제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대안 전략도 여러 문제들을 교차하여 모색되어야 하고,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여성을 위한 정책의 일부를 없애고 남성을 위해 예산사업을 몇 개 만드는 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구분을 하기 모호한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젠더 갈등이라는 개념이 잘못된 것이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나 성평등 가치에 대한 역공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면만 부각되다 보니 이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남성들이 많아진 것이 잘 드러나지 못했다.

20대 젊은 남성들이 성평등 가치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에 통으로 다 반대하는 게 아니라 특정 정책만 비판하는 이들도 있고, 또 이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SNS에 기반한 언론 환경 속에서 일부의 극단적인 목소리가 확대되어 들리게 된 영향도 갈등을 크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험에서 한국사회 남성들 사이에 성평등 가치는 상당히 폭넓게 확산되어 왔다. 최근에는 노령세대 남성들 사이에서도 자녀들과 밀착한 관계를 맺지 못한 ‘남성의 일생’을 후회스럽게 회고하기도 한다.

사회변화에 대한 성향이 보수든 진보든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성매매나 성희롱, 성폭력 등의 문제에 관해 사실 진위를 따질 때의 논리는 여전히 낙후를 면치 못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러한 행위들은 매우 큰 잘못으로 여겨진다. 정치인도 유명인도 성폭력, 성접대, 성매매 문제와 엮이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적 지위를 잃는다. 돌이켜 보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은폐되고 얼버무려졌던 잘못들이고 더욱이 남자라면 용서받곤 했던 일들이다.

남성들 사이에 남성상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많은 남성들은 마초적인 남성상에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남성상은 시대착오적이거나 낙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남성상은 남성에게 생계부양자이자 보호자의 역할을 요구하던 산업화시대의 산물이다. 이제는 낡고 민망한 것이 되었다.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하고, 성평등정책 연구기관에서 일하면서 성평등 가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점을 널리 이해시키고자 나름 힘써왔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생계전담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남성은 ‘무능’하고, ‘찌질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남성들이 토로해 주기를 기다렸다.

요즘에는 성평등 가치에 찬성하든 그렇지 않든, 남성들 특히 젊은 세대의 남성들은 생계부양자 역할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토로한다. 이것을 남성들에게 기대하는 것을 여성들이 ‘빨대’ 꽂아 남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맞벌이로 여성들도 이 짐지기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이 맞벌이를 하며 돌봄에 남성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현상과 데칼코마니의 짝을 이룬다.

남성들의 맞벌이 주장은 여성들의 맞돌봄 주장처럼 평등에 대한 요구이다. 남성들의 이러한 토로가 비난거리가 되지 않고 당연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변화된 젊은 남성들은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이 남성들로 하여금 돌봄의 관계를 맺기 어렵게 하는 것에 대항하여 여성과 힘을 합치고 있다. 이런 남성들은 교실에도, 사무실에도 존재한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추모대열에서도,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는 시위현장에서도, 재생산권 집회에서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외롭지 않고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