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동양일보]왕위 승계를 위해 카를5세(1500~1558)와 펠리페2세(1527~1598)는 나란히 층계로 걸어 단상에 올라섰다. 그 둘이 부자지간이라는 것은 외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카를의 턱을 아들도 빼 닮아 둘 다 아래턱이 심하게 돌출되어 입을 다물 수 없는 주걱턱이었기 때문이다. 카를은 40년의 통치기간 동안 승승장구하며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까지 영역을 넓혔으나 말년에 원인모를 병과 통풍, 치질 등으로 고생하다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펠리페가 왕위를 계승할 자격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충분했다. 유럽에서 합스부르크가(家)만큼 순혈을 유지하며 유전자를 오염시키지 않으려 애쓴 가문도 없었다. 권력과 재산을 지키고자 그들은 꾸준히 근친끼리 결혼하였고 주걱턱은 가문의 전통처럼 유전자로 승계되었다. 돌이켜보면 조선왕조 500년도 순혈주의는 아니더라도 대물림한 권력과 토지를 소유한 재력가문들의 세상이지 않았던가.

역사는 집단의 기억이다. 신화적 내용이 주를 이루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후 헤로도토스(BC484~425)는 방대한 <페르시아 전쟁사>를 집필하였다. 그는 페르시아 국가의 흥망성쇠를 다루었지만 신화적요소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메디아의 왕(아스티아게스)은 명령을 어긴 신하(하르파고스)의 아들을 요리하여 그 아비에게 먹였고, 그 신하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고국 메디아를 무너뜨려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아테네의 명문귀족으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BC460~400)는 신화적 요소를 완전히 거둬냄으로써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고 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27년간의 참혹한 싸움은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다. 패배의 원인은 무모한 원정과 반란을 일으킨 도시들에 대해 씨를 말리는 학살을 자행한 아테네인들의 오만이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할까. 전쟁에 대한 역사를 배우고 역사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우리 미래의 역사는 담보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역사의 중심에 있고자 한다. 그것은 곧 지배의 욕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역사의 중심에 있을 수 없다. 역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미군정기 최고사령관이었던 하지(1893~1963) 중장의 “(조선인의) 일본인 및 미 상륙군에 대한 반란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포고문에는 조선의 해방과 조선인의 자유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 당시 깨어있는 백성들에겐 절대다수의 인간을 노예화한 봉건왕조와 절대다수의 인간을 수단화한 제국주의 역사의 연속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해석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대체로 진보 좌파 쪽에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위안부와 강제진용 등 반일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반면 보수 우파 쪽에는 해방이후의 미국 반공 이데올로기를 대변함으로써 둘의 입장차이는 크다. 역사해석은 냉철한 비판과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자신의 입장만을 절대시하고 상대의 주장을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는데 있지 않다.

구약성경 창세기(22:1-3)에는 여호와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구절이 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이에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고 이삭에게는 번제를 위한 나무를 지우고 모리아 산으로 향했다. 결국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의 음성이 들렸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입증되었고 이삭은 살아났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이슬람 경전 코란에도 나온다. 다만 제물로 바쳐지는 아이의 이름이 구체적이진 않지만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하마드의 선조인 이스마엘로 해석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남이자 이삭의 이복형이다. 하여 모리아의 산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의 성전이 있는 산이 되었다. 무하마드가 이곳에서 승천하였고 예수가 처형된 후 사흘 만에 부활하기 전까지 주검이 묻혔던 곳으로써 두 민족의 역사·종교적 정체성의 구심점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결의 장이 된 예루살렘이라는 역사적 성지가 참극의 씨앗이 돼서는 안 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