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화가

정명희 화가

[동양일보]인생에 대해서 건, 작품에 대해서 건 두려움은 소멸을 부르는 죽음의 전주곡이다. 그것과 맞서 싸워야 창작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내 안에, 당신의 가슴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자유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쇼생크 탈출 (1994)’을 통해 우리는 모두 ‘자유의 여정’에 초대됐었다. 아직도 못 보신 분일랑 기회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이다.

피카소(1881~1973)는 수세기 동안 지켜온 서양미술의 성벽을 깼다. 원근법과 명암법을 과감하게 부수고 입체파를 탄생시킨 화가다. 오펜하이머(1904~1967)가 고전물리학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피카소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가 시인 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를 읽으며 음악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를 들으며 상식을 뛰어넘어 두려움을 깨는 상상을 예술에서 얻은 것은 결코 행운이 아니었다.

일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한국영화 ‘남한산성’으로 우리와 인연이 있다. 그는 영화음악뿐만 아니라 팝, 뉴에이지 풍의 작곡가요 프로듀서며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서 영화음악과 연기를 동시에 맡았었고 주인공 데이비드 보위(1947~2016)와 함께 열연했었다. 장르를 넘나든 것은 새로운 음악을 얻기 위해서다. 그의 대표작이 된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지금도 많은 펜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7)’에서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한 음악가다.

자신의 전공 외에 타 장르와의 소통은 자유를 향한 진정한 여정일 수 있다. 영국의 정치가 처칠(1874~1965)이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쓴 자서전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백남준(1932~2006)이 지금까지의 조형개념을 탈피했었기에 새로운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관념을 파괴하는 진정한 용기야말로 새로운 예술운동으로의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와 송강(松江) 정철(1536~1593)이 귀양살이를 했었기에 ‘추사체’와 ‘송강가사’가 역사에 남아 있는 이치요, 김홍도(1745~1806)와 신윤복(1758~?) 그리고 정선(1676~1759)이 화원에서 퇴출당했기에 새로운 조선의 회화가 탄생한 것과 같은 이치다. 두려움을 털어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세우려면 고정관념과 결연하게 싸워 이겨야만 한다. 두려움은 소멸을 부르는 죽음의 전주곡이라 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내가 ‘자유의 여정’ 시리즈를 통해 나만의 조형세계를 찾아 마지막 작업의 마무리를 하려는 것도 관념의 잔재를 깨는 일이다. 그간 작품에 점경인물처럼 날아들어 여러 해를 공존해 오면서 나를 알리는 존재와도 같던 게 ‘새의 형상’이었다. 나를 대신할 작정이면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하며 에지(edge)있게 개성적이어야 한다. 내가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낄 곳과 끼지 않을 곳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등장하지 않음만 못한 까닭이다. 일테면 주연과 조연이 서로 다투는 형국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조연 같던 새를 취하고 주연이던 배경을 버린 것은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할 것임을 믿은 때문이다. 어쩌면 새의 몸에 장자(莊子BC340~280))가 꾼 나비의 역할을 안겼는지도 모른다. 새가 나인지 내가 새인지 모를 물아일치의 순간에서 평생을 바라고 기다리던 나만의 작품이 탄생할 것을 믿은 때문이다. 모던한 전위적 작가의 덕목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을 줄 아는 것임을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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