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동양일보]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일반적으로 좋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인연은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다고 한다. 좋은 만남도 인연이며 나쁨 만남도 인연이다. 인연이란 말은 원래 불가에서 유래된 말이다. 인(因)은 원인을 말하며, 연(緣)은 원인에 따라 가는 것이다. 즉 인이 씨앗이라면 연은 밭이다. 그러므로 인만 있어서는 결과가 있을 수 없으며, 연만 있어서도 그 결실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 연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인연(因緣)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헤뚜 쁘라띠아야(hetu pratyaya)’ 또는 ‘니다나(nidāna, 음역 尼陀那)’로서 일반적으로 연기(緣起)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인과 연을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백과사전에도 인은 결과를 산출하는 내적, 직접적 원인이며, 연은 결과의 산출을 도와주는 외적, 간접적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원인과 그것에 대한 조건을 뜻하는 경우, 씨앗이 싹을 틔울 때 그 씨앗을 인(因)으로, 그리고 햇빛, 물, 땅, 온도 등의 조건을 연(緣)으로 본다. 이 때 인을 친인(親因), 내인(內因) 등으로, 연은 소연(疎緣), 외연(外緣) 등으로도 부른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금생의 어떤 인물로 태어났다는 인과(因果)와 윤회 사상의 일부가 된 인연(因緣)에 얽힌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두루 실려 있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 제5권의 제9 「효선(孝善)」에 실린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에서는 불국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김대성이 전생에 무밭 세 개를 보시한 공덕으로 후생에 재상집에 태어난 인연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이후 이 인연이라는 의미는 한국인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는 것이 구비문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공양미 3백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심청전』에서처럼 일반 민중들의 도덕률을 형성하는데 일조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인연이 있다. 인연이 없다’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쓸 정도로 한국어의 일부가 되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은 나면서부터 제 짝이 있으니,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인연이란 짝을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이다.’라 하였으며, 불경의 <구잡비유경>에도 ‘남녀간의 인연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가 없으며 왕이 권력과 권세로 자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을 아무리 탐한다 해도 그 인연은 맺어지지 않는다.’는 옛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용수 보살의 <중론>에서도 ‘이 세상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 인연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라 했다. 즉 인과 연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악이 연을 만나면 악과(惡果)를 얻을 것이요 선이 연을 만나면 선과(善果)를 이루게 된다. 부부의 연도 이와 같다.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것이고, 그 만남이 좋은 결실이 되든지 때론 악연이 되든지 하는 것은 그 후의 인연과(因緣果)에 의해 드러난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인(因)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스쳐가지만 이 인(因)을 선과(善果)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실망하거나 운수가 좋지 않았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치는 모든 인(因)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좋은 연(緣)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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