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사촌 누님의 무덤은 정김말의 뒷산인 가는골에 있다. 하루는 오줌이 마려워 밤에 자다가 깨서 우연히 방문 쪽을 보았다. 그런데 창호지를 바른 문에 어른거리는 불빛이 있었다. 틀림없이 불빛인데 파란 불빛이었다. 엄마는 앉은뱅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비록 아버지가 잘 간수하라던 참판 할아버지의 유물이 담긴 궤는 서울서 리어카에 실을 때 실수로 다른 궤짝과 뒤바꾸어 실었을망정 이 재봉틀은 신주같이 위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이 자방침(재봉틀)은 피난 가서 요긴하게 쓸 것 같아 꼭 내가 간수하는 거다.” 엄마는 서울 있을 적에도 밤새워 재봉틀을 돌렸다. 큰언니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큰언니는 꼭 한복을 입었다. 같은 또래의 사람들은 양복을 입었지만 큰언니는 달랐다. “큰언니는 조금만 입어도 사람이 추래해 보일까봐 노상 빨아서 새로 짓지 않으면 안 돼.” 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그런 앉은뱅이 재봉틀이지만 이리로 피란 와서는 엄마 말마따나 동네 사람들의 바느질거리가 쇄도했다. 재봉틀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아낙들이었다. 양식거리 조금만 주면 후딱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엄마가 돌리고 있는 재봉틀은 큰언니의 한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동네 아낙들의 일거리였다. 엄마가 밤늦게까지 재봉 일을 함으로 해서 우리 식구들이 연명할 수 있었던 거다. 엄마는 연신 이 재봉틀을 돌리면서 말했다. “왜 방문 쪽에 뭐가 있어?” “응, 방문에 불빛이 보여. 근데 파란 색야, 봐 봐!” 엄마는 재봉틀에서 손을 놓고 방문을 보았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여우가 또 산소를 파헤쳤나 보다.” “여우가?” “여우가 무덤을 파헤칠 때 무덤 안에 있는 뼈를 물고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사람 눈에 보이는 빛이야.” “파란 불빛인데.” “여하튼 죽은 사람 뼈에서 나는 광채야 사람들은 그걸 보믄 도깨비불이라고 하지. 파란 불빛만 왔다 갔다 하니까” “그게 듣기만 한 도깨비불이구나!” 이튿날 큰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응 그거 죽은 사람 뼈에서는 ‘인’이라는 광채가 나는데 여우가 그 뼈를 물고 이리저리 흔들어 댈 땐 그러는 걸 보는 사람들 눈엔 인에서 나는 파란 빛만 보이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도깨비불이 아냐.” 그러니까 방문에 비친 파란불은 도깨비불이 아니라는 거다. 원광이 조카가 자기 어머니의 산소를 여우가 파헤친 것은 아닌가 하고 가는골을 가 보았다. 여우는 묘를 쓴 지 얼마 안 된 것을 골라 파헤친다는 것이다. 사촌 누님의 무덤은 가는골에 묘를 쓴 것 중 가장 최근에 쓴 거라면서 말이다. 헐레벌떡 원광이 조카가 뛰어오더니, “엄마 묘야. 엄마 묘”하더니 동네 또래의 젊은이들 서너 명을 몰고 갔다. 따라가 보았더니 시신을 감은 삼베 천들과 뼈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사촌 누님의 묘임에 틀림없었다. 바로 옆의 창연이의 애청은 말짱했다. 돌로 쌓은 거라 그러리라 생각했다. 건드려 놓은 흔적이 보였으나 더는 건드리지 않았다. 한 젊은이가 말했다. “돌로 쌓았으니 건드릴 수가 있어. 참 그로 보믄 선조들 머리가 있어.” 한 젊은이가 그 소리를 받아서, “왜, 어른들 묘도 돌로 쌓을 걸 그랬잖어” 또 한 젊은이가 나선다. “그러믄 어른과 아기를 구분할 수가 없잖아. 옛날부터 어른들은 묘를 썼으니까 말여” 별 말이 오간다. 여하간 사촌 누님의 묘는 원 상태로 해놓았다. 그리고 원광이 조카가 마련해온 사과와 포와 막걸리를 봉분 앞에 올리고 뭐라고 주문을 외곤 끝냈다. 창연이 엄마와 그의 남편인 성동이 조카가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길게 한숨을 짓는 것이 눈에 선하다. 엄마가 그걸 보고 그들을 위로하고, 나에게 말했다. “이제 너도 어제 밤에 본 파란불의 정체도 알고 그 불이 도깨비불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지. 실지론 내도 네 덕분에 도깨비불의 정체도 처음 알았다” 그 후 가는골에 갈 때마다 길가에 쓴 사촌누님의 묘와 그 바로 옆에 쓴 창 연 이의 애청을 보곤 어루어루 살펴보곤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을 엄마에게 큰언니에게 원광이 조카에게 그리고 창연이 엄마와 성동이 조카에게 사촌 누님의 묘와 창연의 애청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일러주곤 했다. 그러는 제형인 나와 똑같이 말하곤 하는 동생과 그러는 동생을 보고 빙긋이 웃는 짠누(작은 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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